세상읽기

이 비의 이름은 정치위기

2022.08.27 03:00 입력 2022.08.27 03:02 수정 한윤정 전환연구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뜻 깊은 일입니다. 와서 함께 기후정의를 외쳐 주십시오!”(조효제 사회학자·성공회대 교수)

“기후위기로 모든 생명이 위험에 처해졌다.”(임순례 <리틀 포레스트> 영화감독)

“기후위기를 가장 먼저 겪는 전 세계 여성이 경고합니다. 지금 당장 행동하라!”(권김현영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

“기후를 바꾸지 말고 세상을 바꿔라”(조천호 대기과학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다음달 열리는 924기후정의행진(9월19~23일 기후주간)에의 참여를 요청하는 간곡한 메시지다. 기후행동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 230여개 시민사회단체, 1020여명의 추진위원이 참여했으며 주최 측에 따르면 2만명 넘게 행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참여연대, 청소년기후행동 등 시민단체들이 목소리를 내지만, 지역단위의 기후위기비상행동, 풀뿌리 주민조직, 일반 시민들까지 소통과 움직임이 적지 않다.

기후행동의 시작은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다. 2018년 8월 그레타 툰베리가 1인 시위에 나선 이후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빠르게 확산되면서 2019년 3월24일 첫 번째 전 세계 동시다발 시위가 열렸다. 이어 9월에는 185개국 760만명이 참여한 기후파업이 진행됐고 한국에서도 9월21일 전국 13개 도시에서 7500명이 참여한 기후위기비상행동이 벌어졌다.

그 후 코로나19로 인한 2년간의 거리 두기를 거쳐 3년 만에 재개된 이번 기후정의행진은 훨씬 다른 색깔을 띤다. 2019년만 해도 희망이 보였다. 2018년 10월에 나온 IPCC의 <1.5도 특별보고서>가 보낸 강력한 경고에 따라 전 세계적인 각성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국내에서도 미흡하나마 문재인 정부의 2050탄소중립선언(2020년 10월), 탄소중립위원회 발족(2021년 6월),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 제정(같은 해 9월) 같은 조치가 잇따랐다.

그러나 올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탄소배출량 국가감축목표는 축소되고 탈원전 정책은 폐기됐으며 재생에너지는 위기에 몰렸다. 탄소중립에서 녹색성장으로 방점이 더욱 옮겨가고 에너지 전환에 집중된 기후위기 대응은 대기업 위주로 진행되면서 전환부문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위협한다. 그사이에도 기후는 꾸준히 악화됐다. 2020년 여름의 유례없는 폭우가 ‘이 비의 이름은 기후위기’라는 유행어를 낳았다면, 105년 만에 최고인 올여름 폭우의 이름은 ‘정치위기’로 불릴 만하다.

엄청나게 비가 쏟아진 날, 일찍 퇴근한 대통령의 하루 행동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폭우로 인해 서울시내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이 목숨을 잃은 것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을 당한 직후에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기후위기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대선공약에서는 “기후위기는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이미 시작된 기후위기를 어떻게 해결한다는 걸까. 과감한 사회정책을 통해 기후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럼에도 기후취약계층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정도가 다를 뿐 누구나 기후재난 앞에서 취약하다. 당장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 장애인의 일이지만 미래로 시야를 넓혀보면 어린이, 청소년, 청년이 가장 큰 피해자다. 계급 간 불평등에 더해 세대 간 불평등이 심각하다. 지난 6월 한국에서는 세계 최초의 ‘아기기후소송’이 헌법재판소에 제기됐다. 그러나 2020년 청소년기후행동이 정부의 기후대응 책임을 묻기 위해 제기한 헌법소원 역시 묵묵부답이다.

기후재난의 심각성에 비춰 주류정치가 요지부동인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위기를 내세워 과거로 퇴행하는 가운데 ‘녹색계급’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프랑스의 생태정치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신간 <녹색 계급의 출현>(이규현 옮김, 이음)은 이미 잠재적으로 다수파인데도 대대적으로 조직되거나 동원되지 않는 세력이 ‘녹색계급’으로 뭉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계급은 기후재난의 당사자뿐 아니라 젊은 세대, 지식인, 종교인을 포함해 기후생태 위기를 의식하는 사람들의 연대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번 기후정의행진이 이런 녹색계급의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 ‘그들’의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이라는 공감을 폭넓게 얻어야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리카 체노워스는 인구의 3.5%가 행동하면 사회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실증적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비록 기후정의행진에는 한국 인구의 3.5%인 182만명 가운데 2만명만 나온다 하더라도, 잠재적인 180만명은 이미 적극 공감하고 있지 않을까. 문제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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