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의에 대한 퀴어한 실천

2022.09.05 03:00 입력 2022.09.05 03:03 수정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인권운동을 하면서 새로운 의제를 만날 때면 어떻게 성소수자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이해할지 고민한다. 기존 주제에 성소수자의 맥락은 위기의 경험을 입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지만, 무엇보다 나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언어를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기후정의도 예외는 아니다. 성소수자는 기후위기를 어떻게 경험할까. 최근의 폭우와 홍수처럼 재난이 발생할 때 주거와 가족관계가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어려운 청소년 성소수자는 위기에 취약하다. 재난에 직결된 차별은 빈곤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비이성애 가족과 트랜스젠더, 퀴어 공동체는 재난 속에 집과 가족을 잃어도 부부로 인정되지 않고 법적 성별로만 취급된다. 시민으로 헤아려지지 않는 이들은 공식적으로 애도될 수 없다.

기후위기는 시민을 통제하는 구실이 된다. 인수공통감염병의 빈도가 높아지는 배경에는 삼림을 개간하면서 터전을 잃고 도시로 나온 야생동물과 인간 영역의 경계가 흐려진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동성이 높아지면서 질병은 금세 전 지구적으로 확산한다. 코로나19와 원숭이 두창 등 호흡과 접촉으로 전파되는 질병 특성상 제한된 환경에서 특수한 만남의 문화를 만들어온 게이 남성들은 질병에 노출되기 쉽지만, 외려 취약한 환경 자체가 질병의 전파 원인으로 표적되어 비난받기 쉽다.

위기가 도래할 때 사회는 안전과 방역을 이유로 배타적인 울타리를 세운다. 위기로부터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은커녕 문란함이 질병을 부추긴다고 도덕적 낙인을 찍어 혐오를 조성하고 사회적 불안을 전가하여 그들 스스로 성적 통제와 검열을 하도록 부추긴다.

기후정의는 근본적으로 타인의 안녕을 살피는 일이다. 나의 안전을 요구하면서도 가난하고 장애가 있으며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놓인 삶을 더불어 살핌으로써 같은 행성을 살아가며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함께 위기를 견뎌내야 함을 확인한다. 기후정의는 타인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나의 안전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공동의 감각을 일깨우며, 남반구와 개발도상국의 자원과 주민들을 수탈해온 서구 중심의 경제체제와 이성애 가족주의를 변화시킬 것을 촉구한다.

오는 24일 광화문 일대에서 기후정의 행진이 열린다. 당장 해결이 요원할지라도 위기를 체감한다면 누구라도 거리에 나와 요구하자. 기후정의는 쓰레기와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 너머 심층에 어떤 부조리가 작동하고 위계를 재생산하는지 주목한다. 친환경 소비를 홍보하는 기업과 국가가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동안 개발을 명목으로 자연과 비인류 생명을, 남반구와 여성, 아동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빈곤을 양산하고 인권을 부정해온 역사를 좌시하지 말자. 정상성과 성장 중심 체제를 전환하는 퀴어한 실천에 걸음을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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