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도심을 뜨겁게 달군 기후정의행진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3만5000여명이 참가했다. 3년 전보다 5배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국내 환경 집회 중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대로 살 수 없다”며 정부와 기업에 보다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폭염, 가뭄, 화재, 홍수 등 대형 재해가 많은 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냈을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시민들의 걱정은 커지고 있지만 위기 대응의 핵심인 신재생에너지는 한국에서 궁지에 몰리고 있다. 감사원은 올 하반기 감사 대상에 문재인 정부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새로 포함시켰고, 국무조정실은 신재생에너지 지원사업에서 수천억원대 부실을 적발했다는 발표를 했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신재생에너지 지원사업 예산을 올해보다 32% 삭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문재인 정부(30.2%) 때보다 대폭 낮추는 방안(21.5%)을 추진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이권 카르텔 비리’로 규정하며 사법 시스템을 통해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으니 검찰 수사도 이어질 것 같다. 현 정부에 신재생에너지는 두 마리 토끼 같다. 전 정부 공격의 재료가 되고 자신들이 추진하는 원자력발전 확대의 명분도 제공한다.
정부의 압박으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는 기후위기를 심화시킬 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도 타격을 준다. 국내 최대 전력 소비자인 삼성전자가 얼마 전 ‘RE100’(사용 전력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조치) 선언을 했다. RE100에는 이미 국내외 주요 기업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를 이행하지 않는 기업들은 수출과 투자유치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신재생에너지 규모는 우리 기업들의 RE100 수요에 턱없이 모자라 훨씬 더 늘려야 할 상황이다. 국내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기후위기 대응은 모두에게 희생과 절제를 요구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비용이 들다보니 기업은 이익이 줄고, 소비자들은 더 비싸진 제품을 사야 한다. 전기도 기름도 맘껏 쓸 수 없다. 미래가 걱정된다 해도 당장의 손실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인간이 희생과 절제를 무작정 거부하는 이기적 존재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창안한 ‘독재자 게임’이라는 실험이 있다. 공짜 돈을 받은 참가자 A가 짝을 이룬 B에게 얼마를 나눠주는지 관찰하는 실험이다. 분배 권한은 전적으로 A에게 있다. A는 B에게 단 한 푼도 주지 않아도 된다. 이기적인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다. 하지만 실험 결과 대부분의 A가 B에게 상당한 돈을 나눠줬다. 인간에게 이기심을 이기는 공정에 대한 추구, 이타심이 있다는 것이 실험의 결론이다. 반론도 있다. 실험경제학자인 미국 시카고대 교수 존 리스트는 기부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기부자들의 가장 큰 동기가 세금 혜택이듯이 독재자 게임에서도 순수한 이타심이 아니라 남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이기적인 이유로 돈을 나눠준다고 했다. 그렇게 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한 존재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그 이중적인 속성에서 이타적인 면을 끌어내는 것이다. 시민들의 이기심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희생과 절제, 배려 등 선한 의지를 발현시키는 것이 진짜 리더십이다.
1962년 9월12일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라이스대에서 ‘문샷 스피치(Moonshot speech)’라는 별칭이 붙은 달 탐사 계획 연설을 했다. “우리는 달에 가기로 했습니다.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가 그의 논리였다. 달 탐사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뿐 아니라 당시 소련에 한참 뒤져 있던 미국의 우주개발 기술 수준을 감안할 때 불가능한 목표로 보였다. 그러나 케네디의 리더십에서 진심과 비전을 보고 고무된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직원들을 비롯한 국민들은 총력전을 펼쳤다. 그로부터 7년 뒤 미국은 달에 사람을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미국은 우주개발 경쟁에서 소련에 완벽한 역전승을 했고, 이는 냉전 시대 힘의 균형을 미국 쪽으로 기울게 한 계기도 됐다. 기후위기 대응에서도 어렵지만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국민들을 이끌어낼 리더십이 절실하다. 과연 우리 정치에서 이 리더십을 만날 희망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