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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침묵에 맞서

2022.10.10 03:00 입력 2022.10.10 03:01 수정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2000년대 중반, 성소수자 이슈는 ‘인권의 리트머스’로 불렸다. 당시 부흥하던 진보 정치 안에서도 성소수자 인권이 논란거리로 치부된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은 정치인의 인권 감수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정황을 살피면 성소수자는 혐오와 반인권의 현장에 더 많이 호출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는 조금 이상한 기운이 감지된다. 정치인의 성소수자에 대한 언급이 손에 꼽힐 정도가 된 것이다. 활동가들은 종종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지금 정권은 대놓고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 같지 않으냐고. 드디어 인권이 향상된 것일까. 그럴 리가.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여러 추측이 가능하다. 성소수자 운동이 그동안 차별에 대응하는 역량이 높아지고 당사자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매체가 늘어나면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대중의 감수성이 높아졌을 수 있다. 정치인은 의제를 지지하든 반대하든 성소수자를 언급하는 것만으로 시끄러워지는 데 부담을 느껴 일단 침묵을 택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침묵 아래 사사로운 차별과 제도적 배제는 일상이다. 연이은 사건에 투여할 힘의 부담이 큰 상황에 침묵은 차별을 양분 삼아 당사자의 삶을 침식한다.

이상한 침묵의 배경에는 인권과 평등이 배제당하는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 장애 인권을 요구하는 이들이 지하철역에 나와 장애인 권리예산 확보를 요구하지만 정부는 꿈적도 하지 않고,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 구조적 폭력이라는 비판에도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혐오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정부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개편안으로 신설했다. 불안정노동자들이 곳곳에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정부는 과거 보수정권의 반노동 인사를 재차 올리며 퇴행을 예고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통령 패러디 작업을 대놓고 통제하는가 하면 대구시는 인권보장 및 증진위원회 폐지를 통보했다.

당황스러울 만큼 투명할 정도로 통제와 불평등이 대세가 되어버린 정세에서 가장 쉽게 위협에 노출되는 이들은 사회적 소수자일 것이다. 최근 인천시는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인천퀴어문화축제 장소를 불허했다. 어느 때보다 자유를 추앙하는 정권에서 성소수자가 공공장소에서 집회할 자유는 보장하지 않는 현실은 행정기관의 인권 인식이 어느 수준인지 보여준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이동환 목사를 징계한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 재판위원회는 상소마저 각하했다. 그리고 지난달에는 성소수자를 노리고 데이팅앱으로 유인하여 폭행했다는 사건을 마주하기에 이르렀다. 공사를 막론하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지금을 타개할 수 있을까. 삶의 맥락을 엮으며 연대와 돌봄을, 전환을 위한 도약을 고민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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