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헛헛할 때는 평전을 곧잘 읽곤 한다. 시대와 역사 앞에서 자기 앞의 인생을 어떻게 잘 살고자 분투했는지 엿보는 일은 의외로 큰 배움이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운명’에 맞서서, 때로는 운명과 함께 자기 앞의 인생길을 헤쳐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매력적이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아직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나에게 영향을 준 평전들의 목록 또한 적지 않다. 김호웅·김해양이 쓴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이었던 작가이자 독립운동가인 김학철 선생(1916∼2001)의 일생을 다룬 <김학철평전>은 첫손에 꼽는 평전이다.
“역사는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과제만을 주는 것이다”라는 선생의 말씀이 귓전에 맴돈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중국에서도 끝내 정착하지 못하고, 시대와 세상과 불화했던 김학철 선생의 모진 인생과 문학을 생각한다. 1990년대 중반쯤 어느 모임의 말석에서 방한했을 당시 유머 넘치는 선생의 모습을 뵌 추억이 떠오른다.
하 수상한 시절 탓일까. 헛헛해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평전을 구해 읽는다. <문익환평전>을 쓴 평전작가이자 시인인 김형수의 <김남주평전>은 시인보다는 ‘전사’를 자처했던 시인 김남주(1945∼1994)를 지금 이곳에 되살려 놓는다.
김형수는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라는 김남주 정신이야말로 ‘허황한 미래’에 대한 저항의 서사를 놓치지 않으려는 한 수단이었다고 말한다. 시인 김남주가 저항하고자 한 대상은 불의한 독재정권 외에도 자기 자신의 상투성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에 대해 저항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자기 자신의 상투성에 저항하지 않는 저항은 곧잘 ‘타락한 저항’이 되곤 한다.
그런데 경남도민일보 기자 출신의 김주완이 쓴 취재기 형식의 ‘진주 부자’ 김장하(1944∼) 평전 <줬으면 그만이지>는 ‘나’ 자신에게 저항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19세 나이에 한약종상 시험에 합격한 후, 60년 동안 경남 진주에서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며 축적한 재산 수백억원을 사회에 환원한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더워진다. 못 배운 한을 풀고자 학교를 설립해 운영하다 국가에 기부채납하고, 학생 수천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교육·여성·인권·문화·사회운동·언론·노동 단체 등에 대가 없는 나눔을 실천한 선생의 스토리는 우리 시대 참어른이라는 수사가 아깝지 않다. 올해 100주년을 맞이한 진주 형평사(衡平社)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선생의 모습이 퍽 감동적이다. 사진 찍힌 자리마다 하나같이 가운데 자리가 아니라 ‘끄트머리’ 자리를 자처하는 모습에서 선생의 태도를 잘 알 수 있으리라.
두 권의 평전을 읽으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생각한다. 특히 대가 없는 나눔, 간섭 없는 지원, 바라는 것 없고 기대하는 것도 없는 보시 행위를 실천해온 김장하 선생의 평전을 읽으며 사람됨은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라는 선생의 말에서 큰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두 분의 삶을 더듬으며, 어느 시인이 한 표현을 떠올린다. “그가 살았으므로 그 땅은 아름다웠다”(권경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