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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힘으로 이동한다는 것에 대하여

2023.02.09 03:00 입력 2023.02.14 10:21 수정

[이희경의 한뼘 양생] 자기 힘으로 이동한다는 것에 대하여

어머니와 합칠 집을 구할 때 가장 많이 신경 쓴 것은 두 세대가 살기에 적합한 구조인가 여부였다. 주변 환경이 조용하고 전망이 좋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고. 다행히 이런 것들이 웬만큼 충족된 곳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곳이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있다는 것, 따라서 노인이 걸어서 이동하기 좀 힘들다는 사실은, 당시엔 내 안중에 없었다. 문제를 느낀 것은 한참 후였다. “나를 이 꼭대기에 처박아놓고…”라는 지청구가 빈말이 아니라는 것, 어머니의 우울증이 깊어진 것이 소일거리가 없기 때문이고, 또 그것은 자기 힘으로 이동하기 힘들게 된 사정과 관계있다는 것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예전 살던 곳에서 누렸던 이동권, 즉 혼자서 미장원에 가고, 한의원에 들르고, 약국에서 약사와 수다를 떨고, 돌아오는 길에 팥칼국수 한 그릇 사 먹는 행위가 주는 기쁨과 활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난 전세 기한이 만료되면 다음번엔 반드시 평지에, 근린생활시설 지척에 집을 얻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러기 전 어느 봄날, 어머니가 동네 병원에 다녀오다 아파트 경사로에서 넘어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후 오랜 투병이 이어졌고 이제 어머니는 휠체어를 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밀면서 이 도시가 온통 문턱투성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어머니가 다니는 치과 건물의 경사로는 어찌나 짧고 가파른지 휠체어로 그곳을 오르내릴 때마다 나는 괴력을, 어머니는 45도 각도로 기울어진 몸을 허공에서 지탱해야 하는 신공을 발휘해야 한다. 안과가 있는 또 다른 건물은 1층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데 늘 잠겨있다. 어쩌다 더운 여름날, 나가기 싫다는 어머니를 겨우 설득해 외출해서 냉면이라도 먹을라치면 나는 식당 안에서 “죄송합니다”라는 소리를 열 번도 넘게 해야 한다.

나는 용인시 장애인편의증진센터에 전화해서 위의 두 건물이 1997년 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고 있는 것 아닌지 문의했다. 경사로가 가파른 건물은 그 법 시행령이 정해놓은 의무 기한인 2005년 이전에 준공된 건물이어서 자기들로서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장애인 화장실 문이 잠겨있는 문제는 구청 민원 사항이니 그쪽에 연락하라고 했다. 난 구청 민원콜센터에, 다시 구청 건축지도팀에, 또다시 건축관리팀에, 다시 사회복지과에 전화를 돌렸고 결국 같은 이야기, 자신의 업무가 아니니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1984년, 당시 서른셋의 가장, 액세서리를 만들어 납품하던 손 기술자, 휠체어를 타던 김순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는 서울시장 앞으로 남겨졌다.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또 왜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는 행인의 허리춤을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만 합니까… 시내 어느 곳을 다녀도 그놈의 턱과 부딪혀 씨름을 해야 합니다.”(<유언을 만난 세상>) 그때로부터 근 40년이나 지났지만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오래전 “나는 김포공항에만 내리면 장애인이 된다”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미국에 사는 젊은 교포 청년의 이야기였는데 자기 거주지에서는 장애인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생활하다가 한국에만 오면 매 순간 자기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느낀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신체적 손상이 활동의 무능력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 아니라 사회적 배치의 산물이라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그것을 간명하게 “장애(disability)는 손상(impairment)이 사회적으로 조직된 결과”라고 말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장연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했다. 사실 전장연도 자신들이 사회적 약자이니 배려해달라고 말한 적이 없다. 전장연은 일관되게 시민권, 즉 누구나 공적으로 출현할 권리, 사회적 장소에 나와 자신의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나 역시 그들이 사회적 약자여서 동정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휠체어를 미는 당사자로, 나아가 더 늙어서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에서 살면서 내 힘으로 (아마 적절한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이동하는 노인·시민으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전장연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연대한다. 나의 해방은 그들의 해방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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