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허파는 가볍다

인간의 허파는 두 개다. 왼쪽이 좀 작다. 왼쪽으로 치우친 심장에 자리를 내주느라 그렇다. 국기에 경례할 때 오른손을 펴 왼 가슴에 대는 일이 이런 해부학과 관련된다는 점도 수긍이 간다. 그런데 허파란 말은 어디서 왔을까? 잘 모른다. 다만 허파의 영어 단어인 lung은 가볍다(light)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이 가벼운 두 개의 허파는 기관지에 매달려 소화기관 위쪽에 자리를 잡는다. 진화의 긴 시간에서 보았을 때 이런 모습의 허파가 등장한 것은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오고 나서도 한참 뒤다. 남아메리카에 사는 폐어(lung fish)는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공기를 들이켤 수 있다. 땅콩 모양의 폐를 갖고 있지만 인간과 달리 폐어의 허파는 쌍을 이루지 않는다. 파충류인 샐러맨더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두 쌍의 폐가 등장했다.

약 12㎝인 인간의 기도에서 좌우로 크게 갈라진 기관지는 약 스무 번 넘게 가지를 치면서 허파꽈리로 연결된다. 이들 내부의 표면적은 130㎡ 정도다. 배드민턴 경기장 1개 반에 해당하는 넓이다. 물을 떠나 육상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지동물은 이렇게 표면적을 한껏 넓힌 한 쌍의 허파를 장착했다.

호흡 표면적이 넓은 것이 꼭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와 맞먹을 만큼 모세혈관망이 구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공기 속 산소 기체를 액체인 혈액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인간이 한 번 숨 쉴 때 폐로 들어오는 공기의 양은 500㎖ 정도다. 1분에 평균 15번 호흡한다고 치면 그 양은 얼추 8ℓ가 된다. 그 시간 동안 심장으로 되돌아오는 5ℓ의 혈액은 반드시 폐를 거쳐야 한다. 그렇게 둘은 만난다. 1981년 고산병 연구팀을 이끌고 에베레스트산을 등정했던 존 웨스트는 폐가 호흡 스트레스를 견디려면 모세혈관과 허파꽈리가 만나는 기저막이 얇으면서도 신축성이 커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주를 마친 모든 말의 호흡기에서 출혈의 흔적을 발견한 때도 그즈음이다.

숨 쉬는 일을 아예 의식조차 못할 정도로 우리는 허파에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느낀다. 정말 그럴까? 2020년 미국 스탠퍼드 과학자들은 폐 모세혈관이 두 종류의 세포로 구성된다는 관찰 결과를 ‘네이처’에 보고했다. 보통 모세혈관이라는 이름의 gCap 세포와 기체세포(aerocyte)가 그 주인공이었다. 기체세포는 오직 폐에서만 발견되며 공기의 흐름을 관장한다. 반면 gCap은 주로 혈관 벽을 유지 보수한다. 이런 연구 결과는 폐의 완결성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폐 모세혈관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놀랄 일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17년 캘리포니아 대학 과학자들은 생쥐의 폐에서 혈소판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네이처’에 보고했다. 모세혈관의 상처를 수습하여 출혈을 막는 혈소판은 그동안 골수 거대세포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수제비를 떼듯, 거대세포는 약 500개의 혈소판으로 자신의 몸을 나눈다. 이런 일이 폐에서도 관측된 것이었다. 이렇듯 1분에 약 1000만개씩 형성되는 혈소판은 골수와 폐에서 절반씩 만들어진다. 실험을 진행한 과학자들은 폐에 자리한 거대세포를 이식하거나 골수로 옮겨갈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서둘렀다. 과연 폐에 있던 거대세포는 어느 순간 골수로도 오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왜 혈소판이 특별히 폐에 자리를 잡았는지가 더 궁금하다.

혈소판은 전문 땜장이 세포로 혈관을 수선하지만 최근에는 면역 기능을 보유한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세균 같은 외인성 존재와 마주치거나 조직에 상처가 났을 때 면역계가 즉시 가동한다. 혈관에 상처가 나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혈소판이 만약 면역세포처럼 행동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정온성인 데다 기초대사율이 높은 포유동물같은 생명체들은 산소 호흡이 필수적이다. 그것이 음식물로부터 최대한 에너지를 추출하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 정점에 인간이 있다. 인간은 사자처럼 빨리 뛰지 못하지만 멀리 걷고 높고 추운 곳까지 진출했다. 폐가 적응을 마친 덕분이다. 그러나 극한에 도전하는 운동선수들, 담배를 오래 피워 폐 기저막 두께가 얇아졌거나 반복된 스트레스로 심장에 무리를 가한 사람들의 폐는 어느 순간 출혈이 찾아올지 모른다. 광활한 호흡 표면적을 가진 두 허파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간다. 공기 속의 산소를 세포 저 깊은 곳으로 보내려는 생명의 안간힘일 게다. 숨을 쉴 때마다 우리는 뭍과 물의 계면에 저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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