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예술에 대한 애도

2023.02.25 03:00 입력 2023.02.25 03:01 수정

마이트리 시리분(Maitree Siriboon), 콰이 캄(Kwai Calm), 유리에 스프레이 페인트, 420×600×220㎝, 2022. 촬영 오정은

마이트리 시리분(Maitree Siriboon), 콰이 캄(Kwai Calm), 유리에 스프레이 페인트, 420×600×220㎝, 2022. 촬영 오정은

지난달, 제3회 방콕아트비엔날레 출품작 중 하나에 문제가 생겼다. 태국 작가 마이트리 시리분이 만든 조형물이 부서진 것이다. 작가는 자국의 농경문화를 추억하며 물소와 인간 간 유대를 의미하는 작업을 공공장소에 전시했는데, 그것이 밤사이 넘어져 망가지고 말았다. 어느 외국인 관광객이 술에 취해 작품 위에 올라타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거대한 소 조각은 옆으로 쓰러졌고 사람 형상은 크게 부러지고 깨졌다. 주최 측은 유감을 표하는 한편, 부서진 조각상을 그대로 전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작품 앞에는 관람객 몇명이 놓고 간 꽃과 음식이 더해져 마치 죽은 소에 대한 추도식 같은 풍경이 연출됐다.

며칠 전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트페어에서는 팝아티스트 제프 쿤스의 작품이 한 행인의 부주의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도리어 수집가들의 관심이 몰렸다고 한다. 깨진 조각 파편의 거래가 가능한지 갤러리에 가격을 문의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생존 미술가 중 최고가 판매 기록을 보유한 쿤스의 위상을 재차 회자했다.

그런데 제프 쿤스의 깨진 조각 앞에서 애도나 비애를 표한 이는 없던 것 같다. 해당 작품이 ‘풍선개’라는 인공물을 본떴기 때문인 것도 이유지만, 수백점 똑같이 제작된 에디션 중 하나라는 데서도 그랬을 것이다. 미술시장에서는 작품의 희소성이 곧 가격 상승의 주요 요인이니, 컬렉터로서는 반길 입장이 됐다. 심지어는 작가의 부고가 시장 내 희소식으로 작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발생하지 않는가.

오늘날, 우리가 예술이라고 믿는 것의 물성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이 깨지고 사라졌을 때 슬퍼하는 사람은 누구고 기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둘의 차이는 뭘까? 문득 생각해 보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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