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남매가
안전한 지원체계에 있는 모습 보고
엄마가 눈을 감을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정부와 지자체 향해 목소리 내달라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대체로 중요한 목소리가 작게 들린다. 이것이 내가 칼럼을 쓰는 이유이다. 적어도 이 지면을 쓰는 이유는 그렇다. 내 안에는 세상에 대고 떠들어 댈 만한 이야기가 별로 없다. 혼자 간직해도 그만인 이야기들, 소수의 사람들만 알아도 그만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내 글쓰기 전압을 확 끌어올린다. 너무나 중요한 목소리가 너무나 작게 들려올 때 정신의 진공관이 뜨겁게 달구어진다.

이 지면에 처음 칼럼을 쓰게 된 계기도 그렇다. 2017년 겨울, 광화문 지하에는 장애인들의 오래된 농성장이 있었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함성이 지상을 울리고 있을 때, 내 정신을 휘저은 것은 지하의 작은 소리들이었다.

어느날 한 활동가가 농성장에서 급히 앰프를 찾았다.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작은 앰프에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다. 순간, 나는 그 앰프가 되고 싶었다. 성능이 좋지는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소리를 높여주던 기계장치가 마음에 와 닿았다. 때마침 신문사에서 칼럼 제안이 들어왔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며칠 전 발달장애인 남매를 둔 한 엄마의 호소를 듣고 그동안 잊고 지낸 마음이 떠올랐다. 이 호소를 전할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싸구려 앰프, 싸구려 광고판이라도 되고 싶다. 김미하님의 이야기다(기사도 찾아보고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시기를 바란다).

재작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중증발달장애인 남매와 살아왔다. 그녀는 유방암 4기 환자이기도 하다. 시한부 삶을 통보받았다. 의사는 운이 나쁘면 6개월, 운이 좋으면 1년을 살 수 있다고 했다. 통보를 받자마자 그녀가 달려간 곳은 병원이 아니라 시청이었다.

자료를 찾고 공부를 했다. 남매의 살 길을 찾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제발 죽기 전에 시범사업이라도 좋으니 ‘지원주택’ ‘주거돌봄서비스’라도 시작해달라고 시청과 도청에 호소했다. 그녀가 받은 답변은 6개월 정도의 검토 후에 시행이 될지 안 될지 말해주겠다는 것이었다.

“8월에 전이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처음에 제가 가장 느꼈던 건 극심한 공포였습니다. 제가 죽을까봐 그 공포가 아니라 아이들이 무방비 상태로 이대로 방치되고 제가 죽을까봐, 아이들이 그 어떤 지원도 못 받는 상태에서 제가 죽을까봐, 그것 때문에 저는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 저는 8월에 이미 의사로부터 운 나쁘면 6개월, 운 좋으면 1년밖에 못 산다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 기간 내에 아이들이 지원 체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밖에 저는 바라는 게 없었습니다. … 제게 중요한 것은 제발 제가 살아 있을 때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원체계 안에 들어가는 걸 보고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발 좀 도와주세요. 저는 아이들을 두고 이대로 죽을 수가 없습니다.”

성인 자녀들이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호소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보인 반응은 그야말로 절망적이다. 노력은 한다지만 계획이 없고, 계획은 있다지만 실행은 알 수 없다. “이렇게 아무것도 결정된 것도 없는 상태에서 제가 죽으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분의 답변은 ‘그럼 그때 어떻게든 해결이 되겠죠’ 그래요. 그럼 그 해결 제가 살아 있을 때 보고 죽게 해주세요라고 하니 우선 몸부터 돌보고 오래 사는 게 답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 아픈 부모가 오래 사는 게 답일 수가 있겠습니까.”

국가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을 방기하는 곳에서 부모들이 내몰리는 해법은 자녀보다 하루라도 오래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해법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부모가 살아야만 자식이 살 수 있는 곳에서는 부모가 살 수 없을 때 자식을 죽이는 일이 일어난다.

작년만 하더라도 수원에서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엄마가 여덟 살 발달장애 아이를 살해했고, 시흥에서는 암투병 중이던 엄마가 20대의 발달장애 딸을 살해한 후 자살을 시도했으며, 안산에서는 이십대의 발달장애 형제를 둔 아빠가 자살했다. 이것은 개인적 비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나라가 저지른 사회적 참극에 대한 이야기다.

“제가 죽으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남매는 남매 자신의 삶을 살아갈 거라고, 이따금 엄마를 그리워하겠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동네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거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남매가 안전한 지원체계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녀가 눈을 감을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정부와 지자체를 향해 목소리를 내주시길, 힘을 더해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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