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똥에 대하여

2023.03.07 03:00 입력 2023.03.07 03:04 수정

“불똥은 면하겠습니다. ㅎㅎㅎ” 경찰청 경비국에서 일하는 A는 기분이 좋았다. 이틀 전 이태원 압사 사고의 불똥이 경비국으로 튀면 어쩌나 걱정하던 중이었다. 어제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어 오늘 대통령실까지 경찰이 선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기자들에게 말해줬다. 이게 다 자기가 “공직과 장관실에 전달한 결과”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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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으로 대화하던 서울청 정보부장 B도 흐뭇했다. 어제부터 대응 논리를 만들어 경찰청 정보국으로 전달한 효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력배치가 미흡했다는 시각으로 흐르면 대통령실 이전까지 문제가 번질 텐데 자치단체 책임이 부각되도록 수사 드라이브를 걸어야지. 오늘은 경비국 후배들에게 “경찰은 안전확보의 1차 책임자가 아니”라며 “행사에 경찰이 안전유지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관행을 깨”야 한다는 메시지도 보내뒀다. 그 시각에도 이태원 참사 부상자가 사망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머릿속에 없었다.

그날 저녁 SBS 보도야말로 그들에게는 참사였다. 용산서가 위험분석보고를 올렸으나 서울청이 별다른 조치를 안 했다는 보도였다. 경찰청 정보국에 비상이 걸렸고 보고서 4건 중 언론이 다룬 건 1건뿐이라는 점까지 확인이 됐다. 이들은 보고서가 원래 1건만 있었다고 주장하기로 하고 다음날부터 국회의원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명했다. 그런데 시민단체를 탐문한 경찰청 정보 문건이 또 언론에 공개됐다. B는 비장한 마음으로 산하 경찰서 정보과장들에게 지시했다. “불필요한 문서가 남지 않도록 규정에 따라 문서관리하시라.”

“보고서를 안 썼다고 하면 어떻냐, 컴퓨터를 다 지우는 게 어떻냐.” 정보관을 회유 중이던 용산서 정보과장 C는 이제 자신있게 지시했다. 그런데 경찰청 특별감찰팀에서 “자료 일체를 제출하라”는 요구가 왔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난감했다. 서울청으로 문의하자 B가 짜증을 냈다. “지시를 했으면 그 의미를 이해해야죠. 왜 이해를 안 하고 있어요.” 전화를 끊은 B는 경찰청과도 상의했고 “원칙대로 폐기한 것으로 해서 특별감찰팀에 제출하지 말라”는 지시를 재차 확인했다. 그 후 벌어진 일이 용산서 정보과 컴퓨터 정리다.

공용전자기록손상교사, 증거인멸교사의 죄로 B와 C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공소장에는 숨겨진 3건 보고서의 내용과 경과도 담겨 있다. 경찰청은 가을축제 행사 위험요인, 서울청은 핼러윈데이 치안부담요인 분석을 지시했다. 용산서의 회신이 경찰청과 서울청 지휘부까지 보고되었다. “20만명 이상이 이태원 방문할 것으로 예상, 매년 핼러윈데이는 평일 대비 약 40% 증가한 112신고가 용산서에 접수.” 그러나 경찰청도 서울청도 안전사고 대비책은 세우지 않았다. 용산서 한 정보관이 자발적으로 다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인파 관리, 위험 상황 발생 시 경력 요청 등”을 위해 현장에 나가겠다는 건의도 했으나 묵살당했다. “이거 누가 쓰라고 했나, 주말이니 집회에 총력 대응해야 한다.”

공소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달랐다면 결과도 달랐을까? 오히려 이런 인물들을 요직에 앉히는 것이 대한민국 경찰의 본성은 아닌가? 정보경찰 출신에 경찰청 경비국장을 거쳐 초고속 승진한 윤희근. 경찰청장 취임 후 그는 “정보경찰이 위축됐다”며 “과감하게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독려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경찰의 화두는 “불필요한 일 버리기”라고 했다. 혼잡·교통유도경비업무를 민간 경비원이 하도록 하자는 방안이 참사 이후 경찰대혁신 과제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대로 둔다면 생명의 손상과 안전의 인멸은 지속된다.

불똥의 원래 뜻은 심지가 다 타서 엉겨붙은 찌꺼기다. 불똥을 두고는 불이 붙지 않는다. 생명과 안전의 빛을 밝히려면 불똥을 제거해야 한다. 불똥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윤희근 경찰청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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