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윤석열 대통령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으로 확정되었다. 지난 대선은 한국 사회와 경제가 당면한 근본적 문제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정책 대결보다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와 약점 잡기에 몰두한 세몰이 과정이었다. 많은 국민들은 뽑을 사람, 뽑고 싶은 후보가 없다고 한숨을 쉬면서도, 결국 더 싫은 후보를 배제하는 ‘울며 겨자 먹기’식 선택을 강요당했다.
높은 정권 교체 여론에도 겨우 신승한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 기간에 보여준 극우적 정책과 측근 중심 정치를 고집하면서도, 이재명 대표의 사법처리라는 강공으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해 가고 있다. 구체제의 모순을 뛰어넘어 정상적인 국가로 나가자는 촛불 시민의 총화를 안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근본적인 개혁은 등한시하고 인적 청산과 제 식구 감싸기로 퇴행한 것과 유사한 길을 윤석열 정부도 가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한 민주당은 작년 8월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의원의 출마 여부를 두고 내홍에 휩싸였고, 결국 전당대회는 이재명계의 압승으로 결말이 났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구속영장 청구로 민주당의 내홍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런 당 내홍이 다음 국회의원 선거 공천권을 둘러싼 힘겨루기로 보여진다면, 민주당은 국민에게서 더 멀어질 것이고, 결국 문재인 정부 때처럼, 윤석열 정부도 ‘야당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몰아서 일하고 임금 총액은 감소되는 노동법 개악, 금산분리 완화와 재벌의 은행업 진출에 길을 열어주려는 금융 개악, 대법원 판결 취지와 피해자의 자존심을 뭉개고 국론을 더욱 분열시키는 강제징용 배상 해법 밀어붙이기, 부자와 재벌대기업에 대한 감세 확대 등 윤석열 정부의 전방위적 폭주에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막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해야 한다. 먼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검찰의 공세와 방탄 국회가 계속된다면, 민주당은 더 깊은 내분에 빠지고 어떤 정책적 행보도 주목을 못 받게 될 것이다. 본인은 결백하고 검찰에 대한 불신이 깊을 수 있으나, 이제는 이 대표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또다시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에 출두해 영장실질 심사를 받아야 한다.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되면 이 대표와 민주당은 이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만약 영장이 발부되면, 이 대표는 선당후사의 심정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나 본인의 결백을 사법적으로 입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런 선택을 통해, 이재명 대표만이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멈추게 할 수 있다.
둘째, 기존 지지자와 다수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민주당은 정당으로서 추구하는 가치와 정책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논리적으로나 실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복수의결권 주식 허용 법안에 대한 국회 법사위의 심의를 중단해야 한다. 정부의 모태펀드로부터 투자받고 정부로부터 인증받는 벤처기업의 도덕적 해이만 부추기고, 결국 재벌의 세습에 악용될 것이 뻔한 복수의결권 주식 도입에 민주당이 찬성한다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그 나물에 그 밥’인 셈이다.
나아가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외면하고 있는 우리 경제·사회의 주요 정책 의제를 공론화하고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국내 30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해외 거래처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받은 기업이 이미 30%에 육박했다. 재생에너지 100%를 사용하는 RE100가 2050년이 되어야 일어날 사건이 아닌 것이다. 이미 RE100는 공장과 기업의 입지와 경쟁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간다면, 중소기업들은 도산하고 재벌대기업들은 최신 공장을 미국이나 RE100가 가능한 지역에 지을 것이다. 제조업은 쇠퇴하고 한국은 러스트 벨트(rust belt)가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런 일들이 현실화되면, 사회 양극화와 계급화는 더욱 강화되고 청년실업·조기퇴직·자영업 몰락·노인빈곤·저출생 등의 사회문제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중화학공업 중심의 재벌 경제체제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산업전환을 통해, 포용성장, 혁신경제, 탄소중립으로 이행해 갈 수 있는 구체적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경쟁이 다가오는 총선의 주요 정치 의제가 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민주당이 바로 서야, 이런 정책 경쟁이 비로소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