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4일, 세종으로 가자

2023.04.03 03:00 입력 2023.04.03 03:04 수정

2000년대 초반 나는 독일 남부의 한 도시에 떨어졌다. 처음에 가장 낯설었던 건 캄캄한 밤이었다. 가게는 너무 일찍 문을 닫았고, 심지어 대학 도서관도 일찍 문을 닫았다. 나중에 ‘강제폐점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때문에 특수업종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업장이 6시 혹은 8시 이후에 영업을 할 수 없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어떻게 이렇게 ‘영업할 권리’를 통제할 수 있는 건지 의아했다. 심지어 밤 시간을 뺏긴 것처럼 억울하기도 했다. 어느 날, 불만을 토로하는 나에게 독일 친구가 이유를 설명해줬다. “안 그러면 가게들은 서로 문 닫는 시간을 점점 늦추다가 새벽까지 장사를 할 거야. 그럼 어떤 노동자들은 밤에도 일을 해야겠지. 하지만 그 사람도 밤에는 쉬고 싶을 거고, 집에는 함께하고 싶은 가족이 있고, 일을 마치고 만날 수 있는 친구도 있을 거잖아.”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도 생각해보라는 말에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변명하자면 나는 밤새도록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에서 왔고, 자라는 동안 노동자를 생각하는 ‘좋은 국가’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후 독일에서도 반노동적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되었고 이와 같은 노동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점차 무너졌지만, 당시의 경험은 정부가 왜 필요하고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최근 ‘주 69시간 노동’과 ‘전기요금 인상’, ‘월 100만원대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그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강제폐점법은, 지금과 같은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와, 영업시간과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정책이 어떻게 동시에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돌봄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지금 당면한 노동, 에너지, 돌봄과 재생산 위기는 따로따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다.

현재의 노동정책은 노동자의 시간으로부터 에너지를 최대한 뽑아내는 정책이다. 노동자로부터 에너지를 뽑아내어 소진시킨 후 버리는 방식은 자연으로부터 자원을 추출하고 고갈시키는 방식과 똑같이 닮았다. 회복과 재생을 위한 정책은 어디에도 없다. 정부에서 내놓은 ‘69시간 노동’은 마치 과거로의 회귀로 보이지만 오늘날 자본이 요구하는 것은 산업자본주의 초기와 같은 대규모 노동집단에 대한 장시간 노동체제가 아니라 유연하고도 탄력적인 노동력의 적시조달체제다. 법정노동시간을 최대한 늘리고자 하는 것은 그래야 노동력 조달에 탄력성이 그만큼 늘어나고 그 안에서 필요할 때 그때그때 맘껏 갖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거대한 불안정 무권리 노동의 저수지를 만들고, 여기에는 자본이 언제든 길어 올릴 수 있는 잉여 노동력과, 무가치하게 부스러지는 대기 노동 시간이 고인다. 세계에는 그런 가난한 웅덩이들이 곳곳에 있다. ‘월 100’에 가사도우미를 수입해오겠다는 ‘동남아’도, 그곳의 ‘여성’ 노동자들도 세계적 불평등이 만들어낸 그런 웅덩이 중 하나다.

잉여화된 인구의 거대한 저수지는 한국에서도 도처에 나타난다. 이 웅덩이에 던져진 사람들이 아이들마저 여기에 던져 넣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 불안과 고통을 내 대에서 끝내자가 미래에 대한 최선의 책임 윤리가 되어버린 것이 지금 한국 사회다. ‘인구 위기’라는 출생률 저하는 반노동적이며 불평등한 사회에 대응하는 노동계급의 자생적 재생산 파업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잉여 노동력과 대기노동시간을 통해 노동자의 에너지와 시간을 이중으로 착취하는 체제는 자기와 타인을 돌볼 시간을 완전히 파괴한다. 잠시의 여가마저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훔쳐간다. 오늘날 시간 착취는 노동의 질을 악화하고 노동 강도를 강화하며 공동체를 해체하는 기술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일과는 끝나는 법이 없다. 노동과 노동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고 끝도 시작도 없는 노동이 영원히 반복된다. 혼이 쏙 빠지고, 풀리지 않는 피로에 절어 매일을 살아간다. 나는 이제 멈추고 싶다. 혼자 멈출 수는 없지만 함께 멈출 수는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도록 만들려면 시민의 저항과 직접행동이 필요하다. 회복과 재생, 돌봄을 위한 시간은 이제 노동자만이 아니라 지구를 위해서도 절대적인 요구다. 4월14일 금요일 세종에서 기후정의 파업을 한다. 이 무자비한 속도와 강도를 멈추고 더 늦기 전에 우리가 서로를 살릴 시간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멈추고 사람들이 모인다. 나도 하루를 멈추고 가려고 한다. 갈 수 있는 사람들,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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