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9월2일 대법원에서 한 판결이 있었다. 당시 적용되던 일제강점기 민법 제14조는 “아내가 남편의 동의를 얻지 않고는 소송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한 아내가 남편의 동의 없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아내의 행위능력을 제한하는 민법 14조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이는 한국 최초의 헌법재판으로 소개되곤 한다.
그런데 최초의 ‘헌법재판’이라고 하지만 다소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헌법은 1948년 7월17일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1947년에는 위헌 결정을 하려 해도 그 근거가 되는 헌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대법관들은 무엇에 근거하여 민법 제14조가 잘못되었다고 했는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위 판결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기초 삼아 국가를 건설할 것이고, 만민은 모름지기 평등할 것이며, 따라서 차별을 현저히 하는 민법 제14조는 우리의 사회상태에 적합하지 않다.”
그 후 약 1년 뒤 헌법이 제정되고 헌법재판을 담당할 기관으로 헌법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가운데 실질적 헌법재판은 이뤄지지 못하였고, 1987년 이후에야 지금과 같은 헌법재판소가 운용되기 시작했다. 그 후 26년간 헌법재판소는 호주제, 낙태죄,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위헌결정과 같이 차별을 해소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결정들을 내려왔다.
그런데 최근 헌법재판소에선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결정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26일에 나온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와, 에이즈예방법 제19조, 제25조 전파매개행위죄에 대한 합헌결정도 그러하다. 군형법 추행죄는 벌써 4차례 헌법재판의 대상이 됐지만 또다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전파매개행위죄의 경우 다수인 5인의 헌법재판관이 위헌이라고 판단했지만 위헌 정족수인 6인에 미치지 못하여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문제는 단지 위헌을 선언하지 못했다는 결론이 아니다. 그 구체적 판단에 있어 평등과 존엄의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군형법 추행죄는 합의하에 이뤄진 동성 군인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법이다. 비록 지난해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동성애 처벌법이 가져오는 낙인 자체는 여전하다. 그럼에도 합헌 의견은 혈기왕성한 남성 위주로 이뤄진 군대에서 성적 행위가 발생할 수 있고 이를 처벌하지 않으면 군이 위태로워진다는 해묵은 논리를 반복한다. 그러면서도 이성 군인 간 성행위는 남녀 간엔 서로를 성적 대상으로 인식하니 처벌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극히 이성애 중심적 논리를 댄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자체가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 할 것이다.
전파매개행위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법은 HIV감염인의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한 전파매개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법으로, 에이즈에 대한 무지와 공포가 만연하던 1980년대에 제정된 법이다. 그러나 최근의 과학적 연구는 치료를 받아 바이러스가 억제된 상태의 감염인은 더 이상 타인에게 전파를 할 가능성이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합헌결정을 내린 재판관들은 이러한 과학적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전파 가능성이 없지만 타인에게 알리지 않은 HIV감염인의 성행위는 처벌해야 하니 전파매개행위죄를 유지해야 한다는 모순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사실상 결론을 정하고 그에 맞게 주장을 구성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동성애라고, HIV감염이라고 처벌하는 법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이런 법의 존재 자체가 성소수자와 HIV감염인을 낙인찍고 차별을 확산시키며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핵심인 평등과 존엄을 해친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는 10월26일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였다. 75년 전 오직 민주주의에 기초하여 평등을 선언했던 대법원의 그 기상을 기대한 것은 너무 큰 바람이었을까. 헌법재판소, 실로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