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방통위’ 98일이 남긴 것

2023.12.06 20:52 입력 2023.12.07 14:35 수정

지난달 29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정부과천청사 방통위 회의실에서 2023년 제44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은 이상인 부위원장. 한수빈 기자

지난달 29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정부과천청사 방통위 회의실에서 2023년 제44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은 이상인 부위원장. 한수빈 기자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1일 물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98일 지난 뒤였다. 자신에 대한 국회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급히 사퇴한 이 전 위원장은 역대 최단기 재임한 방통위원장이 됐다. 그러나 그 짧은 기간에도 꽤 많은 일들을 처리했다.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결과였다.

‘공영방송 개혁’을 기치로 내건 그는 취임 첫날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와 EBS 보궐 이사를 임명했다. 이후 재임 기간 중 공영방송 이사·감사 6명을 임명·추천했고 이사 1명을 해임했다. 공영방송 이사진 개편과 사장 교체를 급선무로 삼은 것이다. 그의 취임에 때맞춰 KBS 이사회가 김의철 사장을 해임하고 후임 사장 선임 절차를 진행하다 여권 이사가 사퇴해 난관에 봉착하자 신속히 보궐 이사를 추천해 박민 사장이 임명되는 길을 연 게 비근한 사례다.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 해임 처분에 1·2심 모두 제동을 건 법원 결정에 불복해 재항고한 것도 마찬가지다. 사퇴 직전에도 졸속·부실 심의라는 비판에 귀 닫은 채 보도전문채널 YTN 민영화 추진을 향한 최대주주 변경 승인 심사를 강행했다.

‘가짜뉴스 척결’을 내세워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을 옥죄는 행보도 거침이 없었다. 취임 전부터 “공산당 언론” 운운하며 비판 언론을 찍어내겠다는 심산을 비치더니 “엄중 조치”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을 말하며 날을 세웠다. 이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열어 가짜뉴스를 판별하고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와 민관협의체를 출범시킨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가짜뉴스 정책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심의 대상을 놓고도 우왕좌왕하며 정부에 불리한 보도에 대해서만 중징계 압박을 가하고 있다.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이 정부가 알아서 가려내고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이러니 가짜뉴스 자체가 아니라 정부 입맛에 거슬리는 보도를 하는 언론 단속이 타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동관 방통위’의 98일은 비단 속도전에 그치지 않는다.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이고 방송통신 이용자들의 편익을 증진시킨다는 방통위 설립 취지와 거리가 멀었다.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총선 국면에서 정부에 유리한 지형을 만들려는, 언론 장악의 폭주였다. 이 전 위원장은 사퇴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 정상화 기차는 계속 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앞선 언론 인터뷰에선 “내가 그만두더라도 제2, 제3의 이동관이 나온다”고 했다. 이동관 방통위 체제가 닦아놓은 언론 통제 기조가 빈틈없이 이어지리라고 자신한 것이다. 그래서, 방송통신위원장이 아닌 ‘방송장악위원장’이라는 오명으로 불렸던 그가 물러났어도 그 후 방통위의 전횡이 더 크게 우려되는 게 현실이다.

이동관 방통위의 핵심은 사실상 독임제로 운영된 ‘2인 의결 체제’였다. 이 전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 2명만으로 주요 의결을 한 것이다. 전례 없던 일이다. 방통위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상임위원 5명의 합의제 기구로 둔 설립 취지를 어긴 처사로, 탄핵 사유 중 하나였다. 대통령이 야당 추천 상임위원 임명을 보류한 탓에 빚어진 일이다.

독단 행정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인 2인 의결을 강행한 이 전 위원장은 광고 문구로 익숙한 “야, 너두 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남긴 듯하다. 누가 뭐래도 속전속결로 결정하면 그만이고, 야당이 탄핵해도 “헌정 질서 유린”이라 비난하며 사퇴해버리면 즉각 제2, 제3의 이동관이 등장해 현행 2인 체제를 이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사퇴 닷새 만인 6일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선배인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을 신임 방통위원장으로 지명했다. 빈자리를 시급히 채워 공백 없이 ‘이동관 체제’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 전 위원장은 탄핵 가결 시 방통위 업무가 내년 4월 총선 이후까지 마비되는 사태를 막기 위한 ‘꼼수 사퇴’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빈말이 됐다. 신임 방통위원장 체제로 총선 전 언론 통제 기조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정부 의중이 뚜렷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사 출신 측근 인사의 방통위원장 적격 여부와는 별개로, ‘제2의 이동관’을 성찰 없이 기용하는 이런 식의 인사는 국가 행정기구인 방통위를 무시하고 추락시키는 참사가 될 것이다. 언론 자유는 안중에 없이 손쉽게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 ‘이동관 시즌2’, 대다수 국민이 정부를 외면할 것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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