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원칙을 위배할 정도로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하는 것을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직을 겸하면서 인사권과 공천권 그리고 정치자금도 쥐고 흔든 적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 발전과 함께 권력 분산 제도를 강화하고 2000년대 초에 당 총재 제도도 없앴다.
하지만 대통령을 왕으로 보는 시각과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려는 습성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공식적 제도보다는 오랜 관행이나 사회집단이 공유하는 기존 생각이 현실적인 힘을 더 발휘하는 법이다. 그러나 ‘비공식적 제도’에 의존한 행위는 때로 법률이라는 공식적 제도와 마주하는 순간 범법의 낙인을 받게 되기도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형사처벌이 바로 그런 사례였다. 하지만 이런 큰 국가적 불행을 겪고도 여전히 한국 정치는 ‘제왕’ 중심으로 돌아가려 하고 언론은 제왕적 대통령상을 그려내고 있다. 정치면엔 대통령에 대한 잘못된 기대와 관행을 전제로 한 기사가 넘쳐난다. 대통령의 공식 발언이나 문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을 추론해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행위를 언론은 비판 없이 쉽게 전달해준다.
한국언론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인 ‘빅카인즈’를 이용해 그 정도를 알아보았다. 중앙일간지 10개에 ‘윤석열’과 ‘윤심’(윤 대통령 의중)이란 단어가 동시에 들어간 정치 뉴스 분야 기사를 찾으니 2022년 5월10일 취임에서 이달 22일까지, 집권 1년7개월여간 3095건이 나온다. 평균적으로 중앙일간지마다 이틀에 한 번 이상 ‘윤심’이 등장했다는 이야기다. 문재인 전 대통령 집권 5년 동안 ‘문재인, 문심’ 기사는 단 215건이었다. 아직 문 전 대통령 재임의 3분의 1에 불과한 짧은 기간임에도 ‘윤심’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약 4년의 ‘박근혜, 박심’ 기사 839건에 비해서도 ‘윤심’이 압도적이다.
대통령 마음 읽기가 정치인의 전략이 되고, 공직자와 정치부 기자의 능력이 됐다. 권한위임이나 분권 등의 공적 시스템으로 국정이 돌아가지 않고 대통령이 비공식적·비공개적 독점 권력을 행사하려다 보니 드러나는 현상인 듯하다. 언론은 윤심에 따라 집권당 대표가 퇴출, 선출되는 과정이 문제가 없는 듯, 마치 경마게임 중계하듯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데만 치중했다. 그리고 그 윤심 때문에 생긴 위기를 다시 윤심으로 해결하려는 우스운 일도 심각하게 전달해준다.
대통령을 ‘주군’이라고 하거나 그의 측근을 ‘가신’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제왕적 대통령상을 구성해가는 모습의 하나다. 대통령의 ‘격노’를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자신이 최종 책임을 져야 할 일에 속칭 ‘유체이탈 화법’으로 “격노했다”라고만 전하며 ‘제왕의 공적 분노’라는 이미지로 면책 효과를 준다. 박성호 MBC 기자가 지난 2013년 <방송기자>에 대통령이 주어인 방송 문장의 서술어를 분석해 기고한 바 있다. 조사 결과, 대통령은 주로 “역설” “주문” “지시” “질책” “지적”하는 권위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었다. 지난 11월 KBS <뉴스9>는 윤 대통령 부부의 영국 방문을 보도하면서 외교적 의미보다는 의전 중심으로 뉴스 시간의 5분의 1을 썼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그의 의상이 얼마나 화려했는지 등을 주제로 보도했던 낯 뜨거운 신문과 방송 기사들이 부활한 듯하다.
대통령을 왕으로 섬기려는 것은 알량한 권력을 분양받기 위한 욕심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절대자에 굽신거리고 싶은 마조히즘이기도 하다. 나는 고상한 느낌마저 드는 제왕적 대통령제란 말보다는 정치와 언론 그리고 대통령이 함께하는 ‘대통령 놀이’가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이라도 이 놀이터에서 빠져나와 현실 이슈들에서 문제의 핵심인 대통령의 월권이나 소통 부족을 건건이 지적해줘야 불행한 일의 반복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