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가 전 지구를 집어삼키고 있다. 그것이 자연 생태와 인류 생활에 초래할 되돌리기 힘든 파괴적 위협은 이미 우리 목전에 도달해 있다. 불평등이 야기하는 사회적 위험도 지속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 대자본이 지배하는 오늘의 생산체제는 인간 노동력을 실업과 ‘긱 경제’(사용자의 필요에 맞춰 정규직 대신 초단기 임시직만 고용하는 경제)로 내몰고 신자유주의 민영화로 공공서비스를 망가뜨려 분배를 악화시켜 왔다. 도처에서 지정학적 위기를 고조시키며 제국주의의 전쟁 위협도 불길처럼 번져온다.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 민중의 목숨값으로 정작 판돈을 챙기는 쪽은 이번에도 미국 군산복합체이다.
인류는 과연 중첩된 어려움을 극복하고 생명, 평등, 평화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까. 문제는 오늘의 세계가 그와 같은 과제 해결에 도저히 부적합할 정도로 심각하게 균열된 데에 있다. 더욱이 그 균열은 20세기 말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증폭된 것이기에, 우리는 앞으로 마주할 사태들에 대한 불안한 기시감에 사로잡힌다. 19세기 말 번영의 세계화 물결이, 수많은 희생을 낳은 20세기 초 제국주의 전쟁과 대공황을 거쳐 종결된 역사를 떠올리게 되는 탓이다. 기실 지금의 세계화도 교역량 기준으로든 국제투자 기준으로든 이미 정점을 찍고 축소되는 중이다. 역사는 불행을 반복하고 말 것인가.
20세기 초 당시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시대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 점과 관련해 특히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대공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1933년 4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강의한 것으로 전해지는 내용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작지 않다. 그것은 저자의 사고의 깊이와 시대를 앞서간 이단적 주장으로 인해 관심의 대상이 되곤 했다. 주류경제학자들만 그것을 무시해왔다.
“국가적 자급”이라는 제목의 그 짧은 글에서 케인스는 주류경제학자들의 오랜 신앙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자유무역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옹호하는 경제적 국제주의는 쉽게 제국주의로 변질되어 평화 수호라는 인류의 과제를 그르치기 쉬운 반면 경제적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은 나라들끼리는 서로 갈등할 일도 없으리라고 예견했다. 평화를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하는 편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는 통찰이었다. 해외 자본의 이탈이 염려될수록 국내적으로 바람직한 정책의 시행이 어렵다는 사정도 지적했다. 현대적 대량 생산하에서는 나라별로 특정 재화에 특화하는 이득이 클 리 없으니 “재화는 비용이나 편의성이 허용한다면 국내에서 만들어 쓰고 무엇보다도 금융만큼은 주로 국내적인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케인스가 당시의 자본주의에 대해 정의롭지 않고 도덕적이지도 않아 실패했다고 언급한 대목은 흥미롭다. 미래 이상적인 사회적 공화국을 꿈꾸며 다양한 경제체계를 실험하려는 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자유방임 자본주의라는 단일 이상에 집착하는 것을 비판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적어도 대안 체계를 찾아가는 “전환의 국면에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주인이 되고 싶고 외부 세계의 간섭으로부터 가능한 자유롭고 싶은 것”이라는 그의 진술보다 더 명확하게 경제적 자립의 미덕을 설파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경제학자 자크 사피르에 따르면 케인스의 논의는 자본이동의 자유 때문에 공동체가 지닌 사회적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미국의 포스트 케인스학파 경제학자인 토머스 팰리 또한 각국은 주권국가로서의 발전전략을 재수립할 필요성이 있으며 그 경우 케인스의 국가적 자급에 대한 담론이 개념적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평화와 함께 경제적 자립도 오늘날 여전히 중요한 가치라는 인식이다.
케인스는 같은 글에서 자기파멸적으로 “금융적 결과”에 스스로를 종속시킨 사람들은 “자연의 광채는 전유되지 않는 한 경제적 가치가 없다면서 시골의 아름다움을 파괴”하고 있으며 빵 한 덩어리를 1원 더 싸게 수입할 수 있다고 농부를 망하게 하고 농사에 수반된 오랜 전통을 파괴하는 것이 정말 옳은지 묻기도 했다. 그것은 생명과 녹색, 농업의 가치에 대한 확인이자 동시에 문명의 진정한 변혁은 회계적 이윤 계산에 대한 불복종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담대한 주장을 담은 도전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경제학자가 20세기 초 위기의 시대를 살며 후대에 남긴 일깨움이었다. 이제 경제체계를 그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과제는 온전히 우리 시대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