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선택해 주는 국가

2024.02.15 20:18 입력 2024.02.15 20:24 수정

언젠가 나는 아사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나이가 많이 들고, 주어진 인생을 충분히 성실하게 살아냈다고 확신할 때, 천천히 곡기를 끊으며 스스로 죽어갈 것이라고. 태어나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죽음은 나의 의지로 선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홀로 살아가고, 홀로 죽어갈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의 치기였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다. 몸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거나, 치매 등으로 나의 의식과 기억이 허물어져간다는 것을 알았다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여생을 살아가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나의 의식과 육체를 온전히 움직이고 책임질 수 없다면 기꺼이 죽음을 맞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7일 개봉한 <플랜75>는 나이 75세가 되면 안락사를 택할 수 있는 제도 ‘플랜75’가 시행된 미래의 일본을 그린 영화다. 78세의 여성 미치는 호텔 청소를 하며 홀로 살아간다. 일할 수 있는 한 타인은 물론 국가의 도움도 원하지 않았기에 그동안 생활보호도 신청하지 않았다. 결혼을 두 번 했지만 정확한 개인사는 드러나지 않는다. 호텔에서 정리 해고를 당한 후 일자리를 찾았지만, 쉽지 않다. 심한 육체노동은 이제 무리다. 막판까지 몰린 미치는 결국 플랜75를 신청한다.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한다.

법으로 안락사를 허용한 국가는 스위스, 네덜란드, 미국 일부 주 등이다. 불치병 환자를 대상으로 하다가 확대되어 지금은 스스로 판단 가능한 성인의 선택이라면 안락사를 인정한다. 나는 안락사 합법화를 지지한다. 언젠가 필요하다면 안락사를 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고나 질병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도 일종의 행운일 것이다.

75세가 되면 국가가 안락사를 권장하는 미래를 그린 영화 <플랜75> 포스터.

75세가 되면 국가가 안락사를 권장하는 미래를 그린 영화 <플랜75> 포스터.

하지만 <플랜75>를 보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다른 생각이 스며들었다. 하야카와 지에의 장편 데뷔작인 <플랜75>는 옴니버스영화 <10년>(2019)의 단편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단편은 ‘플랜75’를 둘러싼 갈등과 고뇌를 직설적으로 그린다. 일본은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는 나라다. 고령자에 대한 개인과 국가의 부담이 커지면서 사회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플랜75’는 이제 어느 나라에서건 ‘곧’ 나올 법한 제도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자유다. 기본적인 원칙은 그렇다. 그러나 ‘플랜75’를 선택하는 이들은 결국 하류계층이다. ‘플랜75’를 선택하면 100만원 정도의 위로금이 나오고, 일정 기간 담당자가 매일 통화를 하며 일상을 안정시킨다.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선택은 철회할 수 있다.

그러나 일이 없고, 집이 없는 이들의 마음이 그리 변할 수 있을까? 인생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면, 죽음의 선택은 당연하지 않을까. 서서히 밀려나는 사람들에게 선택이란 때로 사치가 된다. 만약 현실에서 ‘플랜75’ 같은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타의로 내몰리는 노인도 다수 생길 것이다.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가족이나 집단에 선택을 강요당하는 노인들. 악의를 가지고, 오로지 경제적 이익만을 위하여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많이 있다.

국가로서는 노인이 줄어드는 것이 이득이다. 최소한의 지원이라도 노인에 대한 기초생활보장은 필요하다. 100세시대라면 30, 40년이 넘게 지원해야 한다. 그것을 100만원의 위로금과 안락사 시스템을 만드는 것으로 대체한다면, 경제적으로 엄청난 이득이 될 것이다. 노인들은 일을 할 수 없는 존재이고, 생산성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고의 결과다.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마 부시코>(1999)는 노동력이 없는 노인을 죽이는 사회를 다룬 영화다. 가난하고 척박한 일본의 도호쿠 시골, 노인이 된 이들은 자진하여 산속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죽어간다. 남은 가족이 살아남기 위해서. 노인의 죽음은, 다른 이들이 죽음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플랜75>의 미래 일본과도 같다. 다음 세대들이 조금 더 풍요롭기 위하여, 오로지 생산성만을 따져 노인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나는 여전히 자유의지에 의한 안락사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플랜75>를 보며 점점 불투명해졌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치는, 석양을 보다가 옆으로 고요하게 퇴장한다. 석양만이 붉게 물들어간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개인의 존엄을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 국가가 개인을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서, 개인은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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