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덫에 걸렸다. 우리나라의 극도로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은 여기가 얼마나 살기 힘든 곳인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연말에 나온 한국은행 보고서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에 따르면 초저출산의 근원은 청년이 느끼는 높은 ‘경쟁압력’과 ‘불안’에 있다. 경쟁과 불안은 동전의 양면이다. 낮은 출산율은 높은 자살률과 관계된다. 실제로 1992~2005년 자살자 수는 3.3배 늘었고 출산율은 1.76명에서 1.08명으로 줄었다. 자살이 많은 나라에서 아이를 많이 낳을 리 없다.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경쟁은 자연의 질서와 같다는 거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본격적인 등장에서 보듯이 경제 여건이 어려울수록 경쟁은 더 심해진다. 그래서 국가 소멸 위기라며 호들갑을 떨지만, 정부나 정치권은 과도한 경쟁을 해소하는 노력보다는 ‘돈’에 치중한다. 아이 하나에 이런저런 현금성 혜택을 주겠다는 거다. 자본주의 사회답다.
우리는 길을 잃었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에서 첫 기후소송 공개 변론이 열렸다. 정부는 경제성장과 산업구조 등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했다고, 청구인 측은 탄소중립기본법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해서 헌법상 생명권, 환경권, 건강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생산과 소비의 증가를 뜻하는 경제성장은 에너지 사용을 늘려 온실가스 배출을 적기에 필요한 만큼 줄일 수 없게 한다.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성장은 불문율과 같다는 거다. 어디엔가 감당 못할 재앙이 도사리고 있지만, 정부와 기업은 성장에 몰두한다. 다른 길을 모르니 그저 가던 길을 꾸역꾸역 갈 뿐이다.
사람도 자본의 먹잇감인 시대
덫에 걸리고 길을 잃은 오늘, ‘무위당(无爲堂) 장일순’을 생각한다. 오는 22일 30주기를 맞는 장일순 선생은 고향인 원주에서 교육, 신용협동조합,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하다 1970년대 후반 운동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농약 중독으로 땅과 농민이 죽는 당시 현실에서 부의 분배를 넘어 자연과 공생해야 하는 시대가 왔음을 깨달았다. 문제의 근원은 산업문명과 자본주의에 있었다. 그는 ‘땅의 죽음’을 대전환을 요구하는 시대의 징표로 읽었다. 성장 지상주의에 빠진 자본주의는 오늘도 땅이야 죽든 말든 생산과 소비를 늘리기에 바쁘다. 비정규노동과 플랫폼노동 등 갈수록 착취의 강도가 높아지는 노동 환경에서 사람 또한 자본의 먹잇감으로 떨어졌다. 이 거대한 죽음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지금과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장일순은 ‘생명사상’을 가야 할 길로 제시했다. 생명은 ‘하나’다. 하나인 생명이 온 우주에 스며들고 모든 것이 이 생명에 참여하여 생명을 얻고 하나를 이룬다는 생명사상의 자양분은 동학과 불교와 노자 등의 가르침에서 왔다. 천지만물이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으니, 하늘과 사람과 사물을 공경하는 ‘삼경(三敬)’이 삶의 도리다. 천지가 나와 한 뿌리요, 만물이 나와 한 몸이다. ‘나락 한 알’ 속에도 우주가 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고유한 존재 이유가 있다고 보는 생태학도 생명사상과 동일한 세계를 전망한다. ‘인위(人爲)’는 위(僞), 곧 거짓을 뜻하니 장일순의 호 ‘무위당’은 온갖 거짓에서 벗어나 자연의 이치를 따르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장일순은 자본주의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경쟁을 단호히 거부했다. “경쟁과 효율을 따지면서 일체가 이용의 대상”이 되고 “생명이 무시”되는 탓이다. 하나인 생명에 기반한 세계에 상응하는 삶의 원리는 경쟁이 아닌 협동, 효율이 아닌 절제다. 우리는 승자독식의 경쟁 지상주의 세계에서 살지만, 패자가 없으면 승자도 없는 법이다. 삶은 함께 기대며 걸어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출생률과 자살률, 기후위기에서 보듯이 삶의 이치에 반하는 행동 양식인 경쟁이 심해질수록 하나인 생명 공동체는 더 위험해진다. 경쟁은 남이 아닌 오늘의 ‘나’와 하는 경쟁, 곧 본연의 삶의 원리인 협동과 절제의 능력을 기르는 노력이어야 한다.
잘못된 길 버리고 생명사상 길로
“주판도 잘못 놓게 되면 털고 다시 가야” 한다. 지금껏 해왔다고 잘못된 걸 고집하면 열심히 할수록 잘못만 커진다. 생명사상은 산업문명과 자본주의 체제가 잘못이라는 선언이다. 잘못된 길을 버리고 가야 할 길로 가자는 제안이다. 서로를 죽이는 경쟁을 서로를 살리는 협동으로 바꿔야 한다는 각성이다. 1985년 원주에서 시작된 ‘한살림운동’은 생명사상을 땅과 농사에 적용한 생명운동이다. 장일순은 한살림운동으로 그저 몸에 좋은 농산물을 먹자고 한 게 아니라 생명의 근본적 존재 양식인 협동과 공생의 삶을 확산하고자 했다. ‘장일순’이 너무 이상적이고 급진적인가? 하지만 덫에 걸리고 길을 잃은 오늘, 문제의 뿌리에 닿지 않는 대책은 모두 미봉책이다. 당장 편한 길이 아닌 가야 할 길을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