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은 죄가 없다

2024.06.05 18:06 입력 2024.06.05 20:44 수정
김광호 논설위원 lubof@kyunghyang.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19일 오후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열린 ‘당원과 함께-민주당이 합니다’ 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19일 오후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열린 ‘당원과 함께-민주당이 합니다’ 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17대 총선 후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중앙당을 사실상 폐지하고 명실상부한 원내정당화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152석으로 민주노동당(10석)과 함께 보수정당을 패퇴시킨 역사적 승리 직후였다. 원내정당화는 정당 민주화와 정치개혁의 핵심이었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최대 세력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국회의원 중심의 퇴행적 원내정당을 거부한다”는 결의문을 냈다. 친이재명 조직으로 31명의 22대 국회의원을 배출한 이 모임은 “당원들이 꿈꾸는 직접민주주의 혁신을 이뤄낼 것”이라고 했다.

20년의 시공간을 둔 뿌리를 공유하는 정당의 정반대 ‘정치개혁’ 풍경이다. 대의가 세월에 풍화된 것인지, 정당 구성이 달라진 것인지. 풍화라면 진보지만, 구성 변화라면 퇴행일 수 있다. 두 풍경 사이엔 ‘국회의원은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민주당의 뜨거운 감자인 ‘당원권 강화’를 포함한 당헌·당규 논쟁을 보면 대비는 좀 더 극명하다. 지난달 30일 당헌·당규개정TF가 공개한 시안의 핵심은 국회의장·원내대표 경선에 당원투표 20% 반영, 대선 1년 전 대표 사퇴 규정 개정, 부정부패 연루자 직무정지 당헌(80조 1항) 폐지, 당론 위반 시 공천 부적격 심사 반영, 소속 공직자 부정으로 인한 재·보궐선거 시 무공천 당헌(96조 2항) 폐지 등이다. 발의 예정인 지구당 부활 정당법 개정안도 같은 궤적이다. “당원 중심 정당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지구당 부활이 필요하다.”

집약하면 국회의원 권한을 줄이고 당원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민주당 정치개혁, 정당 민주화의 요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원내정당 거부는 “편리해진 직접민주주의 플랫폼이 당원 주권주의 시대를 가속화하고 있다”(이재명 대표)는 명분이라도 있다고 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한둘이 아니다.

당론 거부가 공천 부적격 사유라면 민주당 의원은 ‘당론의 노예’가 돼야 할까. 국회의장·원내대표 경선까지 당원이 투표한다면 ‘공직은 국민이, 당직은 당원이’라는 당연한 대표성 원리는 무시되는 것인가. 당원권 논의와 함께 부패 관련 규정 폐지는 왜 포함되는가. 그 규정들은 지난 20여년 여야가 서로 등을 떠밀며 어렵사리 끌고 온 정치개혁 내용이었다. 과거 면책·불체포특권 제한 등 국회의원의 ‘윤리적 책무’를 높인 열린우리당 정치개혁과도 대비된다. 특히 이 문제는 ‘사법 리스크’에 직면한 이 대표와 연결될 거란 점에서 고약하다. 대표 사퇴 시한 개정도 이 대표의 2026년 지방선거 공천권 행사를 위한 것이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 대표 대권가도를 위해 당 정신인 당헌을 바꾼다면 바른 개혁의 방향일 수 없다. 이 모든 질문에 답해야 할 책임이 지금 민주당에 있다.

원내정당화도 단순하지 않다. 정당 민주주의와 깊게 연관돼 있다. 3김 시대 제왕적 총재의 ‘당론 거수기’로 전락한 국민 대표(국회의원)들이 정치·정책의 주체가 된다는 의미였다. 박정희 정권 시절 공화당에서 기원한 ‘상의하달·상명하복’ 정당체제의 붕괴도 뜻했다. 이런 구조하에서 여당은 정부의 입법 하수인이 되고 삼권분립은 형해화된다.

정당이 커진다는 것이 꼭 정당이 강해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00만 책임당원이 목표였던 열린우리당 시절과 비교하면 200만 권리당원과 500만 당원의 지금 민주당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참여 정치의 시대에 ‘당원 주권’은 가야 할 길이다. 정당이 시민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투영하는 공간이 되고 있기도 하다. 대신 역할과 한계도 분명해야 한다. 민심과 조응할 제도 혁신과 견제장치가 함께하지 않으면 그저 혼돈이기 쉽다.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교육을 통해 가치·정체성을 공유하는 애정 어린 당원이 아닌 허수들일 때 그러하다. 이런 거품 속에선 조직력·행동력 강한 ‘당원 내 당원’ 세력이 주도권을 쥔다. 이들이 존중과 관용 대신 당내 권력에 더 마음 쓸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과거 동원 당원처럼 특정 정치인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국회의장 후보 경선 당시 “당심이 곧 명심(이 대표 의중)이고 명심이 곧 민심” 발언은 그래서 몹시 부적절하고 우려스럽다. 국민의힘 내부의 “윤심이 곧 민심” 주장이 여당을 정부 부속물로 만드는 것이듯, 그 발언은 ‘민주’를 ‘한 사람’의 것으로 전락시킨다. 지금 민주당이 가려는 길은 개혁의 길인가, 권력의 길인가. 따지고 보면 결국 문제는 정치인들이다. 강성 당원의 활용 가치를 계산하는 정치인들이 덩치가 커져도 철은 들지 않는 정당의 토양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부터 반성해야 한다. 당원들은 죄가 없다.

김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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