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도스토옙스키의 이 명작은 인간사회의 중요한 문제인 ‘죄’와 이에 상응하는 ‘벌’이라는 화두를 제기하고 있다. ‘죄와 벌’이라는 문제는 결국 죄를 법으로 규정한 ‘범죄’와 이에 상응하는 ‘처벌’이라는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과 벌린 논쟁이 보여주듯이, 오래전부터 “법은 강자의 이익”일 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인류의 역사와 현실을 보면, 이 같은 주장이 상당히 타당하며 역사는 ‘권력과 부의 불평등에 따른 처벌의 불평등 역사’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법은 강자의 이익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고 ‘보편적 사회적 규범’으로서 도덕과 법, 이에 기초한 죄와 벌은 필요하다.
인류의 역사 속에 녹아 있는 ‘죄와 벌’이라는 오랜 공식이 최근 들어 와해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과 함께 특정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에 지지자들이 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팬덤시대가 도래하면서, 팬덤의 대상인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이 보편적인 사회적 규범으로 볼 때 심각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경우에도 과거와 달리 지지자들이 이들에 대해 계속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세상이 가짜뉴스 등에 의해 ‘진실’이 사라진 ‘포스트진실사회’로 변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정보는 배제하고, 자신과 같은 주장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인지부조화와 확증편향에 의해 팬덤대상에 관한 한 죄와 벌 개념이 실종되는 것이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두 사건은 ‘팬덤시대의 죄와 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첫 번째는 트로트 스타 김호중의 음주운전과 은폐 시도이고, 두 번째는 극우포퓰리스트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유죄평결이다.
김호중은 그 죄가 중하다. 음주운전뿐만 아니라 사고를 낸 후 도주했고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 또한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사회적 비판을 무시한 채 공연을 강행했다. 하지만 열성적인 팬들은 그를 일방적으로 옹호해 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가 구속된 뒤에도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세계적인 천재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며 “죄인이 아닌 성자로 거듭날 기회”를 줘야 한다고 김호중을 옹호하고 있다.
트럼프에 대한 팬덤현상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전직 성인영화 배우와의 성추문 폭로를 막기 위해 거액을 지불하고 그 비용 처리를 위해 회사 장부를 조작한 것과 관련해 34개 범죄행위에 대해 최근 모두 유죄평결을 받았다. 유죄평결 후 무당파 유권자들의 절반가량이 트럼프가 후보를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트럼프 지지자 중에는 8%만 트럼프의 후보 사퇴에 동의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소액후원금이 기록적으로 쇄도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 후보가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형사사건에서 유죄평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정치의 3인자인 마이크 존슨 연방하원의장 등 법을 만드는 공화당 연방의원들조차도 이번 재판을 “가짜 재판”이라고 비판하며 트럼프를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목할 것은 일부 김호중 팬들의 항의내용이다. 구체적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고 국회의원에 출마한 후 검찰독재를 부르짖는 당선인, ‘불체포특권 포기선언’을 뒤집고 당에 부결을 읍소했던 당선인 등 국민을 기망하는 권력자들은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자기 잘못을 시인한 이후 반성하며 뉘우치고 있는 김호중에게 이다지 가혹한 돌을 던지려 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조국 의원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칭한 것으로 우리 팬덤정치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선물 수수, 채 상병 사건 등 윤석열 대통령의 자기 주변에 대한 이중잣대와 불공정은 법을 희화화하고 조 의원, 이 대표에 대한 팬덤정치를 부채질하고 있다. 만약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조 의원, 사법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이 대표가 최종 유죄판결을 받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죄와 벌이라는 문제가 팬덤지지층과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논의되어 나갈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 같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가 한 다음과 같은 주장은 팬덤시대의 ‘죄와 벌’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내가 뉴욕 5번가 거리를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총을 쏜다고 해도, 나는 내 지지표를 절대 잃지 않을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