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 이층, 카프카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돌멩이, 이층, 카프카

일은 꼬이고 울적해 발길에 걸리는 대로 걷어차며 걸을 때, 아무 잘못도 없이 애꿎게 당하는 건 대개 돌멩이거나 나뭇가지인데 그냥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던 발끝에서 옛생각 하나 몰려나오기도 한다. 어린 시절 뒹군 고향의 이웃 마을은 거창군 고제면이다. 한자로 高梯, 하늘에 걸친 ‘높은 사다리’라는 뜻. 덕유산 자락인 고제는 한때 금 광산도 있고, 오일장도 열리며 번성했으나, 옛 자취는 흔적 없고 그 시절을 기억해 줄 어른들마저 사다리 타고 거의 다 올라가신 듯하다. 지금은 농협 하나로마트가 그나마 큰 건물이고, 보건소와 면사무소는 시무룩하게 서 있을 뿐이다. 그 곁에서 눈을 씻고 보면 ‘높은 다리’가 뱀 허물처럼 앉아 있는데, 이젠 그곳에서 떨어져도 안 다칠 듯한 가냘픈 높이다.

그때 고제면 마을 어귀에는 초가집 이층이 있었다. 지붕 가운데를 뚫어 원두막처럼 올린 소박한 규모였다. 초가로 만든 이층이라니! 지금까지 남았더라면 아마 전국에서 유일한 건물이 아닐까.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갔다. 부산 적기 뱃머리 근처 달동네 중의 달동네. 반딧불이나 쫓아다니던 촌놈이 네온사인에 그만 혹해서 미련하게 그걸 신기하게 여기고 줄곧 쫓아다녔다. 우리 동네에서 제법 번듯한 건 시장통 쌀집 아저씨네 가게였다. 각종 바구니에 농산물과 돈통 너머로 이층으로 가는 내부가 훤히 보였다. 부러운 건 그 계단이었다. 다람쥐처럼 하루 종일 저 사다리만 오르내려도 하나 지루하지 않을 장난감이 아닌가.

기특하게도 그런 얄팍한 생각은 오래가지 않는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다가, 김성동의 소설 <만다라>에서 특이한 이층을 만났다. ‘남녀가 이층을 짓는다’는 문장은 좀 얄궂긴 해도 인간사의 진면목을 정확하게 포착한 강렬한 표현. 누구나 저 이층에서 태어나 일층에 겨우 살다가 지하로 가는 존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줍기도 하였다. 아무튼 심심하게 걷다가 돌멩일 걷어차는 날이 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저 돌멩이가 그냥 아무렇게나 있는 게 아니라 누가 곱게 올려놓은 이층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구와 함께 만드는 아주 귀여운 이층. 그러자 나도 이 이층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와 낯설게 변신한 갑충이 아닐까, 카프카의 소설 한 대목에 잠시 빠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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