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라는 비극

2024.07.10 17:54 입력 2024.07.10 18:52 수정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휘젓고 있는 ‘김건희-한동훈 문자 파문’이 심상치 않다. 댓글팀 의혹까지 그야말로 일파만파 형국이다. 여당 한 중진 의원은 “심리적 분당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누가 무슨 의도로 반년이나 묵은 궁중 비사를 터뜨렸을까.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들이10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서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나경원·윤상현·원희룡·한동훈 후보. 연합뉴스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들이10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서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나경원·윤상현·원희룡·한동훈 후보. 연합뉴스

친윤(석열) 세력 기획설이 근거 있게 들린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장예찬 전 최고위원의 잇단 폭로, 연판장, 기자회견 논란까지 기획설을 뒷받침하는 실행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이런 내막들이 사실이라면 친윤 기획설은 총선 참패 후 지속되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로 봐야 한다. 윤 대통령이 거부한 채 상병 특검법을 한 후보가 (조건부) 찬성했는데도 지지층은 한 후보 편을 드는 현실까지, 여권 주류의 공포감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래서 용산 묵인하에 총선 책임론으로 한 후보를 흠집내 판 흔들기에 나섰단 것이 친윤 기획설의 핵심이다.

반윤 프레임을 띄우면 이번에도 전대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분노의 에너지만으로도 이준석 전 대표를 몰아낼 수 있었던 때와 지금은 다르다. 국정운영 부정평가율이 60%를 웃도는 집권 중반기에 여권 주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뭘 해도 보수가 결집할 거라 믿는 것이 기획의 동력이겠지만 탄핵의 강도 건넜던 지지층이 권력의 역행을 반길 리 없다. 문자 파동에도 한동훈 대세론은 흔들림 없는 반면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대구·경북에서조차 30%대까지 하락했다. 역대 정권의 레임덕은 여권 균열에서 시작됐다. 레임덕 위기도 권력 후광에 곁불을 쬐고 갈등을 획책하는 참모가 있다면, 윤 대통령은 제나라 명재상 안영의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힘을 앞세워 교만하게 구는 3명의 장수를 복숭아 2개로 제거한 계략)를 참고하길 권한다.

드물지만 한 후보 측 유출설이 없진 않다. 그러나 이 가설은 설득력이 약하다. 문자가 공개되면 한 후보가 김건희 여사의 사과를 외면해 총선 참패를 자초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게 뻔하다. 한 후보가 이런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문자 유출을 감행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 가설은 한 후보가 문자 파동을 고리로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충돌을 각오했단 걸 전제한다. 5건의 문자 원문엔 한 후보의 ‘김건희 특검’ 조건부 수용에 대한 윤 대통령의 격노, 이를 무마하려 한 김 여사의 요구(윤 대통령과의 통화, 사적 사과)가 담겨 있다. 만약 한 후보가 권력 투쟁을 감행하려 했다면 국민적 공분을 산 중대 사안에 사적 분노로 대응한 윤 대통령, 윤 대통령의 분노를 대신 전달하고 사적 사과를 시도한 김 여사의 월권 을 지적했어야 했다. 나아가 지금까지 김 여사와 주고받았다는 문자 300여통을 전부 공개해서 이 기회에 당원들의 평가를 받겠다는 정도의 결기는 보여야 했다. 그러나 한 후보는 그러지 않았고 ‘사과 의사가 없었다’는 정도로 용산 개입설에 선을 그었다.

문자 파문은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기세다. 의도와 결과에 따른 유불리는 그들 몫이므로 지켜볼 일이다. 상대방이 권력을 잡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권력 투쟁이 정치의 목적이 됐고, 과거와 달리 공식 권력과 비공식 권력의 다툼을 한국 보수 정치가 수용하는 지경까지 온 것이 이번 파문의 본질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김건희라는 이름 석 자의 등장이다. 진실게임 와중에도 권력을 위임받지 않은 사인이 대통령 직무에 개입한 의혹(윤 대통령과 한 후보 통화 요구, 두 사람 회동 촉구 등)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는 비공식 정치가 공식 권력을 압도하는 상황이 일상화됐음을 입증한다. ‘보편적 민주주의 결핍(시민권 제한 등)을 넘어 가장 후진적인 형태의 민주주의가 구조적인 퇴행의 길로 들어섰다’(신진욱 교수)는 견해도 있다. 더 심각한 건 개별 사안에 대해 ‘내 청을 들어달라’는 수준이 아니라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의 세계관과 문제인식 프레임까지 지배하고 있단 사실을 확인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이는 김 여사가 전한 ‘윤 대통령 격노’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다. 김 여사 본인 생각을 한 후보에게 보내고 이를 한 후보가 외면하니 윤 대통령이 화를 냈다는 건데 이는 김 여사의 생각과 판단, 감정에 윤 대통령이 포획됐거나 동조하고 있단 걸로 봐야 한다.

구혜영 정치부문장

구혜영 정치부문장

이런 현실에 사과, 정무 감각, 배신자, 해당 행위 논란이 무슨 소용이랴 싶은 무력감이 든다. 점령군의 점령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점령군의 탱크 대수를 따져 봤자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김건희’가 거론되는 한 언제나 주도권은 그에게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실정을 못 보게 막는 ‘김건희’라는 존재를 더 이상 용인하면 안 된다. 그러려면 ‘김건희발’ 불의와 잘못에 익숙해지지 않는 ‘순진한’ 분노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가 등장할 때마다 생전 처음 불행을 겪듯 최선을 다해 분노해야 한다. 국민의힘 전대 주자들은 대통령 부인의 위법 의혹이 처벌 대상임을 분명히 밝히는 싸움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김건희라는 비극 앞에 정치가 취해야 할 ‘순진한’ 분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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