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병원을 비운 지 6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고 있다거나, 전공의들이 요지부동이라거나, 의료공백이 커지고 있다는 표현들이 관용구처럼 순서를 바꿔가며 반복됐다. 비슷한 표현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할까 불안한 환자들, 체력의 한계 속에 빈자리를 지키는 의료진, 일자리를 위협받는 병원 노동자들은 익숙해진 표현에 무뎌지지 못한 채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로 촉발된 의·정 갈등은 전공의들이 지난 2월 집단사직하며 본격화됐다. 사태를 매듭짓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했던 몇번의 변곡점이 있었지만 매번 기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사태가 악화됐다. 대통령이 전공의 대표를 만나도, 법원이 집행정지 항고심에서 정부의 손을 들어도, 정부가 각종 행정처분을 철회하고 복귀를 위한 특례까지 발표한 뒤에도 전공의는 돌아오지 않았다.
정부가 의료계와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속전속결로 대학별 의대 증원분까지 못 박아버린 일방적 추진 과정에 문제가 크지만, 아직까지 ‘백지화, 원점 재검토’에 머물러 있는 의료계도 그들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태가 장기화한 데 따른 가장 큰 피해는 환자들이 입었다. 의·정 갈등으로 의료현장 곳곳에 공백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부는 의료개혁이 필요한 이유로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내세웠는데,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 역시 가장 취약한 이들 ‘지역·필수의료’ 현장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있다.
당장 지역 응급실이 위태롭다. 충남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순천향대천안병원 응급실은 최근 응급의학과 전문의 절반이 병원을 떠나면서 ‘365일 24시간’ 원칙이 5일간 멈췄다. 파견 의료진을 급히 받아 정상 운영에 나섰지만, 지속되는 격무에 언제 또 누가 병원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강원 속초의료원도 단축 운영에 들어갔다. 서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국립중앙의료원도 지난 26일 세전 연봉 4억원에 응급의학과 전문의 채용 공고를 냈다. 전공의 공백을 전문의가 메꾸는 임시체제가 지속 가능하지 않은 데다,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영역부터 한계가 오는 상황이다.
지금으로선, 의사 수를 늘리는 것 역시 정부 의지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전체 전공의의 절반 이상을 사직처리하고, 하반기 전공의 7645명을 새로 뽑겠다는 정부 계획부터 빨간불이 들어왔다. 주요 수련병원 교수들이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반대하며 새로 들어오는 전공의들을 가르치지 않겠다고 ‘보이콧’을 선언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원자 자체가 적은데, 교수들마저 가르치지 않겠다고 예고해 지원자들을 더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사직 전공의들이 일반 병의원에 몰리고 해외취업, 입대 등을 고민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내년에 아예 신규 의사가 배출되지 못할 가능성도 커진다. 내년도 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에 의대생 대다수가 원서를 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가 전국 의대 본과 4학년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5.5%가 국가시험 응시에 필요한 ‘개인정보 제공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의대 4학년생 95.5% 이상이 시험을 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내년도 신규 의사가 배출되지 않고, 전공의와 전문의 양성도 절벽에 맞닥뜨릴 것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의사들이 진료를 거부하고, 병원을 떠난 상황 앞에 어떤 대책도 무용지물이다. 그동안 정부와 제대로 된 대화는커녕, 단 한번 의료계의 통일된 입장조차 내놓지 못한 의료계의 입장 변화가 절실하다. 정부와 만나 수용 가능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사제간의 의리와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내부의 벽을 공고히 하는 데 쓰는 것을 멈춰야 한다.
정부 역시 6개월째 의료공백이 출구없이 이어지는 상황을 이제는 멈춰 세워야 한다. 계속되는 파견과 돌려막기로 언제까지 ‘비상진료체계’를 끌고 갈 수 있을 것인지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의료개혁은 개혁대로 차질 없이 진행하되, 의료계를 대화 테이블로 불러올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국가의 의료 시스템이 위기에 처한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민생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