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가난

2024.07.29 20:39 입력 2024.07.29 20:40 수정

더위가 추위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매일 깨닫게 된다. 기후위기 시대, 폭염 속에서 많은 이들이 가족과 지인의 안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뜨겁고 습한 날씨에 지쳐 있다가, 문득 이 정도의 폭염이라면 ‘아는 사람’의 경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해는 물론 더위, 추위에 대처할 수 없는 사람들, 돈이 없어 극단적인 더위나 추위가 닥칠 때에도 냉난방 시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에너지 빈곤층이다. 시기와 기준에 따라 수치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100만가구 이상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쪽방, 고시원, 옥탑방 등 극단적 날씨에 대처하기 더욱 어려운 곳에서 살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15만가구 이상이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가난 때문에 냉난방을 하지 못하는 가구 중 절대 다수는 노인가구, 특히 나이가 더 많은 고령노인가구이다. OECD 1위인 높은 노인빈곤율로 볼 때, 또 75세 이상 고령노인에게는 국민연금도, 일자리도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이다.

빠른 속도의 기후 변화를 불러온 것은 우리 모두이고, 그 영향도 우리 모두에게 미치지만, 사실 이로 인한 고통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더 많은 산업생산을 해 온 잘사는 나라들과 더 많은 소비를 한 부유한 사람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지만 가장 먼저, 더 큰 고통을 겪는 이는 돈이 없는 사람들이다.

원인에 대한 책임이 가장 적은 사람들이 찜통더위를 온전히 몸으로 받아내야 하고 쾌적한 잠을 준비할 수 없다. 이 속에선 건강하기도, 미래를 꿈꾸기도, 사람과의 온전한 관계도 이어가기 어렵다. 이제야 8월이 시작되는데 다들 어떻게 이 시간을 견딜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많고 적음으로 인한 삶의 질 차이는 당연하게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이 차이가 무조건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생태위기는 소득불평등, 빈곤과 만나 부정의를 증폭시킨다. 특히 기후위기 원인에 대한 책임이 가장 적은 가난한 이들에게 고통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정의는 명분을 넘어서는 생존 문제이다. 국가가 왜 존재하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치는 땡볕과 습기와 누수에 지친, 그래서 건강도, 미래도, 관계도 위협받는 가난한 이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아니 이들이 중심에 서서 목소리를 내도록 만들어야 한다.

유독 가난에 대해서는 ‘타인의 고통’을 눈에 띄는 형태로 전시하고 무감각해지기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미봉책으로 상황에 대응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태와 사회정의를 함께 확보해야 한다면 우리 사회는 대신 큰 폭의 변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생태적 전환과 함께 복지의 기준과 방식에 큰 변화가 생겨야 지속 가능성이 생긴다.

일례로 지금 주거복지는 주거비 보조 위주이고 획일화된 주택을 보완적으로 제공하고 있지만 이를 넘어 생태와 결합된 커뮤니티를 다수 만들어내는 것으로 바꾸는 정책 전환을 모색할 만하다. 또한 에너지 비용을 지원하는 현재의 에너지 바우처는 그 대상과 수준이 너무 제한적이다. 에너지 지원 방식과 대상을 크게 넓힐 필요가 있다. 아울러 누구나 누려야 할 ‘최저생활’ 개념과 기준을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게 재구성하는 것, 이에 따른 소득보장 수준과 범위를 넓히는 게 필요하다. 대표적 기후취약집단인 고령노인, 즉 국민연금에는 가입하지 못한 세대이자 기초연금은 부족한 나이 든 고령노인에게 추가 소득을 제공하는 게 그 예이다. 물론 지금 저연금 상태인 국민연금을 높여야 제도 간 정합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상태와 복지의 패러다임 변화 없이 가난한 사람부터 기후위기 고통을 온전히 감내하도록 한다면, 결국 그 고통은 모두의 고통이 될 것이며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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