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설립하여 유지해 나아가는 모임’인 협회(協會)는 다양하게 쓰이는 명칭이다. 특수법인인 대한변호사협회도 있고, 상인협회처럼 공동의 영리를 위해 자치적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다만 조직의 생리상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 중 일부가 임원이 되어 이끌어가다 보면 본래의 목적이 변질될 가능성도 늘 존재한다.
‘낭만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의 금메달 소식에 마냥 기뻐하다가, 인터뷰 내용과 사회관계망에 본인이 올린 글을 보며 죽비로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벌써부터 “귀국 후 회견을 열어 제기할 일이지 그 좋은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할 것까지야 있느냐”며 ‘품위’ 운운하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바로 그 자리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었으며, 그 말을 위해서 견디고 올라선 자리이기도 했다. 2018년 국가대표에 선발된 때부터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원동력이 자신의 ‘분노’였다며 “제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다. 제 꿈은 어떻게 보면 ‘목소리’였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안세영 선수의 ‘작심 발언’이 무의미한 희생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협회의 반응이 충분히 예상되어 영 불길하다. 인터뷰 직후 감독·코치진의 문제였는지 묻는 감독에게 안세영 선수는 그건 아니라고 하면서 말했다.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부상 관리에 대한 푸념이 아니라 협회의 선수 관리 시스템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다. 감독 자신도 모를 리 없을 이 고질적인 문제를 과연 협회가 얼마나 인정하고 개선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협회가 바뀌는 길은 애초의 ‘같은 목적’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다. 선수 보호와 육성을 위한 체계적이고 전폭적인 지원보다 조직 자체의 권위와 이익이 우선한다면 이미 목적이 변질된 셈이다. 특정 운동 종목의 협회에서만 보이는 문제가 아니다. 시대는 급변하고 새로운 인재가 넘치는데 왕년의 영광으로 자리를 꿰찬 이들이 책임지지도 못할 간섭만을 일삼는다면, 그 조직은 이미 본래의 목적을 가로막는 걸림돌일 뿐이다. “권력보다는 소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안세영 선수의 말이 부디 땅에 떨어지지 않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