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했다. ‘민주당의 이재명’에서 ‘이재명의 민주당’이 되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란 사실 그리 좋은 말은 아니다. 정당이 책임정치의 주체라는 교과서 기준으로 보면, 어떤 정당의 누구란 표현은 자연스러우나 누구의 정당이라는 것은 그러하지 못하다. 그것은 정당의 개인화라는 뜻으로도 들린다. 그러나 우리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주목한다. 왜냐하면 그 말이 민주당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계기로 어떤 변화를 하려는가? 어디에 자신을 세우려고 하며 어디로 가려는가? ‘이재명의 민주당’이란 이런 궁금한 것들에 대해 귀띔해 주는 말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전당대회에서 내건 가장 큰 깃발은 ‘기본사회’다. 이 개념은 이재명 대표가 자치단체장을 하면서 쓴 ‘기본소득’을 주거, 교육, 금융, 의료 등으로 확장한 것이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사회통합적 시장경제 강령’을 처음 표제어로 내걸었던 2006년 전당대회 이후, 민주당은 주요 전당대회 때마다 강령의 대표 개념을 천명해 왔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민주당의 강령은 ‘기본사회 강령’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기본사회’라는 개념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동안 이재명 대표가 정책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은 잘하지만 자기가 추구하는 사회의 큰 그림을 제시하는 건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기본사회’는 그런 평가에 대한 응답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개념의 힘은 아직 미지수다. 그것이 거시 비전의 바탕이 될 수 있는지, 그것이 민주당의 여러 정책과 서로 어울리는지 따져봐야 할 일이 하나둘 아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기본사회’와 함께 들고 있는 다른 하나의 깃발은 ‘당원 중심 대중 정당’이라는 조직 노선이다. 이는 민주당의 당원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으며 당원들의 참여가 적극적이라는 현실을 반영하는 개념이다. 이는 촛불혁명 이후 참여의 효능감이 커져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고,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소통과 연결의 기회 구조가 확대된 탓이라 할 수도 있는데, 정당은 이런 당원 구조의 변화에 맞추어 당원들의 당 운영 직접 참여를 확대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적극적 당원의 직접 참여가 커지면서 당 내부의 가치 다양성이 위축되거나 그것에 영합하는 엘리트 기회주의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당 대의 체제의 숙의 기능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걱정도 간과할 일은 아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기본사회’와 ‘당원 중심 대중 정당’, 두 가지 흐름으로 움직일 것 같다. 나쁘지 않아 보인다. ‘기본사회’는 경제성장이라는 ‘기적은 이루었으나 기쁨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헤쳐나가 희망을 쥘 수 있는 최고 강령으로 의미가 있다. 그리고 ‘당원 중심 대중 정당’ 노선은 새로운 매체의 등장에 부응하는 정치 고관여층의 참여를 담아내는 정당 운영의 틀로 그 방향이 적실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두 가지 다 적잖은 걱정거리도 가지고 있다. ‘기본사회’를 실현하려면 필요한 재정은 어떻게 조달할 것이며 평등주의적 오류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당원 중심 대중 정당’ 노선은 이른바 강성 당원들의 목소리만 대변하여 조직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지지기반의 확장성은 약화되는 건 아닐까? 이런 우려에 대한 대답이 필요하다.
사실은 이런 문제점을 점검하는 과정이 전당대회 기간에 있어야 했다. 전당대회에 출마한 대표 후보 사이에, 혹은 최고위원 후보 사이에 이런 문제를 두고 치열한 비평과 논전이 있었더라면 그 과정에서 이런 개념의 허점이 짚어지고 더 다듬어져 완성도가 높아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향후 이 개념에 따라 민주당의 진로를 설정하고 경쟁 정당과 논전을 하는 데 더 쓸모 있는 전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민주당의 전당대회는 시종일관 이재명 대표의 시간이었고 최고위원 선거의 경우는 이재명 대표 체제 공고화 계획 이외에는 어떤 비전도 공론의 장에서 관심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그런 작업을 해야 한다. 민주당 지도부가 ‘기획’을 해서라도 당내 민주주의를 촉진해 조직이 경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강력하기만 한 체제는 ‘크리스털화’하기 십상이다. 단단하기는 하나 부서지기 쉬운 체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괜한 걱정이 아니라 권력의 본질에 따른 만고불변의 진리다. 관료 체제 기업 등과는 다른, 정당이라는 조직의 철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