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 흔적을 간직한 나무

2024.08.19 20:28 입력 2024.08.19 20:29 수정

서울 종로구 연지동 회화나무

서울 종로구 연지동 회화나무

유관순, 안중근, 김구 등 독립투사들의 빛바랜 사진을 인공지능(AI)으로 환하게 웃는 장면으로 부활시킨 영상이 화제였다. 밝은 웃음이 뭉클했다. 그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김마리아’ 열사가 있어 반가웠다.

김마리아의 독립투쟁을 보좌한 한 그루의 큰 나무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다. 이화학당과 정신여고의 전신인 연동여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김마리아는 1913년부터 모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독립운동에 나섰다.

그때 일제 순사들이 김마리아를 체포할 빌미를 잡으려고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연동여학교를 급습한 적이 있었다. 순사가 들이닥칠 낌새를 눈치챈 김마리아는 독립운동과 관련한 비밀 문서들을 학교 운동장에 서 있는 회화나무 줄기의 구멍 안쪽에 숨겼다. 나무줄기가 썩으면서 생긴 큰 구멍이 평소 나무 상태를 세심히 보살피던 김마리아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순사들은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나무줄기의 썩은 구멍 안쪽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김마리아를 일제의 손아귀로부터 보호한 회화나무는 높이 21m, 가슴높이 줄기 둘레는 4m의 큰 나무다. 나뭇가지는 동서로 15m, 남북으로 13m나 펼치며 수려한 생김새를 이뤘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여느 회화나무에 뒤지지 않는 크기와 아름다움을 갖췄다. 게다가 민족 수난사의 한 조각,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흔적을 간직한 의미 깊은 나무이기도 하다.

이후 정신여고는 서울 송파구로 떠나고, 높지거니 솟아오른 큰 빌딩 뒤편에 이 나무만 쓸쓸히 남았다.

투사의 자취를 증거하기 위해 나무 바로 곁에 김마리아의 흉상을 세우고, 바로 옆에는 이 자리가 정신여고 터였음을 알리는 안내판까지 세웠다. 하지만 지금 이 나무를 돌아보는 이는 많지 않다. 안타까운 일이다. 민족의 아픈 역사를 담고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를 오래오래 지키고 널리 알려야 한다는 뜻이 유난히 절실하게 다가오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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