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으로 시험에 든 기분이라면

에어컨으로 시험에 드는 기분, 나만 느끼는 건 아닐 듯하다. 틀어놓으면 죄짓는 기분, 틀지 않으면 자학하는 기분. 기후위기로 여름은 더 무더워지고 냉방은 더욱 필수적인 것이 되는데 그렇게 전기를 쓸수록 기후위기는 더 심각해진다니 고약한 시험이다. 그런데 이건 시험의 일부일 뿐이다. 지난주, 에어컨 설치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가 작업한 공간은 중학교 급식실이었다. 누군가에게 밥을 먹이려 일하던 누군가는 더위를 견디며 밥을 짓고, 누군가를 시원하게 해주려고 일하던 누군가는 더위에 쓰러졌다. 그날, 13일은 전력수요가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한 날이었다.

전력수요가 늘어도 필요한 곳으로 흐르지 않고 에너지 소비를 줄여도 다 같이 줄지 않는다. 재생에너지를 늘리자는 요구는 그 자체로 순백하게 들리지만 고개가 갸웃거려질 때도 있다. 올해 1월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무식한 얘기’라며 비판한 적이 있다.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원전은 필수”라고 하니 “RE100(재생에너지 100%)을 달성하지 못하면 수출길이 막힌다”고 지적한 것이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계획이 경기도 정책을 표절한 것이라는 주장도 덧붙인 걸 보면 반도체 산업 육성에 진심인 듯한데, 햇빛과 바람에서 에너지를 얻어 이렇게 써도 괜찮은 걸까? 여전히 위험물질을 공개하지 않아 노동자들이 병을 앓고 목숨을 잃는 일이 끊이지 않는 산업이고, 전력뿐만 아니라 물을 엄청나게 끌어와서 쓰고 버리는 산업인데, 반도체 클러스터가 뿜어낼 온실가스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길은 아닐 듯하다. 기껏 재생에너지를 구해 생명과 생태의 재생을 해치는 일에 쓰는 것 아닌가.

우리의 진심을 담은 요구가 어딘가에서 미끄러져 기대한 적 없는 장면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한둘은 아니다. 석탄화력발전을 중단하자고 했지 발전노동자의 권리를 양보하란 건 아니었다. 기후재난으로부터 안전하게 공공임대주택을 늘리자고 했지 도시를 개발하고 확장하란 건 아니었다. 돌봄이 모두의 권리이자 책임인 사회로 전환하자고 했지 이주민을 들여 돌봄서비스를 값싸게 공급하는 국가 책임을 요구한 건 아니었다. 정책과 제도를 설계하고 추진할 힘을 가진 세력은 ‘좋은 말’을 끌어가 세상을 더 엉망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졌는지, 낭패감은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 그러니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907기후정의행진 슬로건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상을 바꾸자는 말이 막막할 법도 한데 나는 마음이 더 가벼워진다. 자본주의는 무엇에서 출발하든 자본이 더 많이 축적되는 방향으로 길을 내왔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싸게, 만들고 쓰고 버리는 세상이 순탄하게 굴러왔을 리 없다. 문제들을 서로 다른 장면에 배치하며 연명해왔을 뿐이다. 온실가스 배출은 환경 문제, 과로사는 노동 문제, 돌봄 책임 전가는 여성 문제…. 그런데 기후위기로 점점 더 많은 장면이 더 가쁜 속도로 이어지니 오히려 모든 장면이 저절로 연결된다.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는 대신 어디에서든 시작하면 된다. 부정의의 알리바이로 우리를 연결시키는 자본주의에 맞서 정의의 근거로 서로를 연결하려는 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가 든 시험은 기후위기로부터 어떻게 탈출할까가 아니라 기후정의를 향해 어떻게 연결될까다. 부정의한 구조에서 혼자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하지만 정의로운 구조를 함께 짓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기후정의행진은 이미 시작한 일을 어떻게 이어가며 더 크게 연결할지 서로에게 묻고 듣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 세상을 바꿀 방법을 모르는 게 걱정인가, 너무 많은 게 걱정이지. 걱정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맡기고 우리는 신나게 서로에게 줄을 대자.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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