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0조

2024.08.21 20:44 입력 2024.08.21 20:49 수정

2023년 초, 가족여행으로 일본을 갔다. 코로나19도 웬만큼 지났다 싶어 간만에 마음먹었는데, 이것저것 준비하기도 귀찮고, 돈도 생각해야 해 가장 가까운 동네로 간 것이었다. 늘 그렇듯 일본은 쓴 돈만큼의 서비스와 질을 보장하고, 그럭저럭 익숙하면서도 또 적당히 이국적이라 즐거운 여행지다. 그렇게 3박4일의 일정을 잘 보내고 공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을 때 사건이 발생했다.

그전까지 만나본 일본 택시 기사와는 사뭇 다르게, 이 초로의 기사는 영어로 말을 걸고 공항까지 가는 길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여행지에서 현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 사람의 이야기는 곧 이상한 쪽으로 빠졌다. 한국의 정치에 대해 논하기 시작하더니, 한국에서 일본에 요구하는 과거사 사죄가 너무 과도하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자신은 전쟁 후에야 태어났는데 도대체 자신 같은 세대가 무슨 책임이 있다고 사과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하,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하고 생각을 가다듬는 와중에, 자신은 한국에 가면 맞기라도 할까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얘기까지 했다. 이 얘기에 그전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까지 나서서 온 식구가 동시에 “노~!!”라고 외쳤다. 항상 그렇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본 적 없는 동네에 대해 가장 강한 편견을 지니고 있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이 가본 적도 없는 호남에 대해 가장 센 악평을 늘어놓은 것처럼.

다행히도 공항 가는 길이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안 그랬으면, 이런 소리를 듣는 스트레스를 어쩔 뻔했나 싶다. 이 입맛 쓴 대화를 곱씹으며 가장 걸린 부분은 “나는 전쟁 이후에 태어났는데, 왜 우리 세대한테까지 계속 사과를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발언이었다. 실상 이와 비슷한 발언을 하면서 과거의 일에 대해 책임을 부인하거나 그만 좀 잊자고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라고 하는 얘기는 좀 과한 듯도 싶다. 내가 한 것도 아닌 일에 대해 왜 내가 계속 ‘죄송합니다’를 외치고 다녀야 하는가? 그 과실은 내 위 세대가 다 따먹은 것 같은데, 그냥 평범하게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고 있는 내가 왜 그 세대 일을 사과해야 한단 말인가? 왜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을 기억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자신이 역사적 존재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인간은 진공인 공간에 태어나지 않는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인간은 이미 특정 공동체가 형성해온 과거가 축적된, 역사적·사회적 그물망에 놓인다. 거기에 그 사회가 깔아놓은 상식과 관습을 학습하며 성장하기에 더더욱 그 사회의 역사를 함께하게 된다.

자기 공동체의 역사기억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같은 공동체라는 인식이 없는 사람이다. 나 혼자도 충분히 잘난 것 같은데, 굳이 저 구질구질해 보이는 공동체에 엮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공동체에 해로운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공동체의 역사기억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학창 시절에 받은 성적표 중에서 좋은 성적표만 남기는 것처럼 자기가 보기에 마음에 드는 기억만을 선택한다. 물어보지는 않았으나 그 택시 기사도 자기가 태어나기 전의 자랑찬 일본 역사는 얼마든지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고는 건전한 자아상을 형성시키지 못하고 타인을 제멋대로 평가한다. 그 택시 기사는 무슨 선심이라도 쓰듯 “그래도 한국인은 중국인보다는 낫다”는 소리까지 했다.

원하건 원치 않건 인간은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공동체의 서사를 공유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며, 모든 역사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0조이다.

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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