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907’ 기후정의행진

2024.08.22 20:11 입력 2024.08.22 20:24 수정

덥다. 참 덥다. 에어컨을 켤까 말까 번뇌할 때마다 두통이 심하면 발가락을 세게 찍어버리라는 식으로 서사하라 사막 근처의 마라케시를 떠올린다. 그곳의 40도 온도에서는 숨만 쉬어도 폐가 화상을 입듯 고통스러웠다. 너무 더워서 체내 열을 땀으로도 빼내지 못하면 6시간 내에 사람이 죽을 수 있는데 이를 습구온도라고 한다. 아마 그때 나는 감으로 습구온도를 느낀 것 같다.

그런데 먼 곳의 일이 아니었다. 한국의 기온 상승률이 세계 평균보다 3배 더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덥고 춥고 더럽고 서러운 일은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라지게 될 직업을 ‘체험리즘’으로 기록한 책 <어떤 동사의 멸종>에는 ‘까대기’라는 작업이 나온다. ‘까대기’는 택배 상하차 일인데, 밤새 한 사람이 25t 정도의 물건을 들어올리고 1590번 정도 굽혔다 일어선다. 이 물류창고에 에어컨이 없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 회사에서 포도당을 지급한다. 이주 노동자가 이주의 자유 없이 붙박이로 일하는 비닐하우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에어컨을 설치하다 사망한 20대 초반의 노동자가 작업하던 급식실에는 선풍기가 2대 있었다. 이 폭염 속에서 나이 든 급식 노동자들은 불을 써서 요리를 해왔다.

축사에 감금된 닭, 오리, 돼지는 땀샘이 없다. 돼지는 진흙이나 물속에서 온도를 식혀야 하고, 새는 날개를 펼쳐 바람을 맞아야 한다. 땀샘이 없어 다른 방식으로 온도를 조절해야 하는 동물 90만마리가 폭염에 죽었다. 이들은 재산피해액으로만 계산된다.

최근 전국 65개 섬에 전력을 공급하던 하청 노동자 184명이 해고당했다. 회사는 불법 파견으로 판결나자 노동자에게 자회사로의 이직을 제안하며 더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요구했다. 이를 거부하자 모두 해고. 또 다른 발전소인 태안화력발전소에선 도시 외곽 발전소까지 운행하는 통근버스에 정규직만 탈 수 있다. 비정규직은 탑승 금지다.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전주리싸이클링타운에서 메탄가스가 터져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한 간호사가 음식물쓰레기 시설에서 실려 온 노동자를 응급실에서 본 가장 처참한 죽음 중 하나로 뽑았던 글이 생각났다. 그는 온몸이 음식물쓰레기로 뒤덮인 채 응급실에 실려 왔다. 지하로 내려가 우리 앞에서는 사라져도 여전히 그곳에 사람이 있다. 일일이 사람 손으로 스크루에 낀 이물질을 제거하고 겨울엔 꽁꽁 언 음식물쓰레기를 뜨거운 물로 녹인다.

가끔 환경운동이 대책 없이 발랄해보이기도 한다. 에코백과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전기차를 타자고 외치고 국 끓일 때 냄비 뚜껑을 열어두었다가 가스를 낭비한다고 화들짝 뚜껑을 닫는 나는 피식 스스로를 조소한다. 그러나 대량소비를 떠받치는 택배와 물류, 값싼 전기와 고기 반찬, 내놓으면 다음날 사라지는 쓰레기가 만수산 칡넝쿨처럼 환경운동과 엉켜 있다. 더위와 추위, 고통을 느끼는 존재들의 절절한 이야기다. 기후행진이 아니라 기후정의행진이 열리는 까닭이다.

올해 기후정의행진은 9월7일 서울 강남에서 열린다. 사정없이 탄소를 배출하면서도 정작 가장 더운 곳에서는 에어컨 없이 생명이 죽어가는 이 미친 부정의를 바꿔야 한다.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고금숙|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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