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폭염백서’를 기다리며

2024.08.25 20:38 입력 2024.08.25 20:39 수정

어제 회를 먹었다. 광어, 우럭 그리고 또 매번 듣지만 기억나지 않는 물고기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더 시원한 맥주에 차가운 회 한 점, 시원했다.

아침에 일어나 행정안전부 홈페이지 ‘안전관리일일상황’을 들여다본다. 올여름 폭염이 시작되고 생긴 습관이다. 다행히 어제는 폭염으로 누군가 사망하지 않았구나. 그러나 조피볼락 1만7871마리, 쥐치 2883마리, 도다리 4352마리가 죽었다. 어제 먹은 싱싱하다 못해 쫄깃함이 터지는 물고기는 폭염을 견뎌낸 것들이구나. 양식장 위로 둥둥 뜬 물고기들은 어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뜰채로 걷어냈을까. 같은 날 돼지와 닭, 오리도 1057마리가 죽었다. 맥없이 축 늘어진 동물들은 어디로 갔을까.

작년 폭염일수는 14.1일, 올해는 이미 21일을 넘기고 있다. 행안부는 ‘당분간 전국 대부분 지역의 최고 체감온도가 33~35도’로 매우 무덥다고 예고했다. 온열질환자는 작년 2600여명에서 올해 30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폭염도 사그라질 것이고, 언론이 매일같이 보도하던 폭염의 심각성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단풍이 드는 가을을 기대하며 높아지는 하늘을 보겠지. 그렇다고 해도 이번 폭염에 녹아버리고 타버린 고랭지 배추는 가을을 지나 겨울이 돼도 만날 수 없다.

여름마다 폭염으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연일 보도되고 폭염 대책 토론회가 열린다. 그럴 때마다 노동안전보건단체 활동가들은 비애감이 인다. ‘올해도 또 이렇게 반복되는구나’ 폭염 때 폭염 대책을 논하는 건 굶주린 사람을 두고 벼농사를 짓겠다고 땅을 알아보는 것처럼 어처구니없는 뒷북이다. 전문가와 관료들의 느긋한 대책들은 지금 당장 ‘작업중지’를 명령할 수 있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합리적 방패막이가 된다. 그러는 사이 ‘더워서’ 누군가 또 죽는다.

폭염은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일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달궈진 아스팔트에서 빡빡한 헬멧을 쓰고 배달을 하는 라이더에게 폭염은 언제부터 시작될까.

50도가 넘는 철판 위에서 용접을 해야 하는 건설노동자,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 에어컨을 설치해야 하는 일용직, 대형 웍을 달구기 위해 가스불을 켜는 조리노동자를 대상으로 ‘온열질환 재난문자’를 보내주는 행안부와 폭염 시 휴식을 명령하는 노동부는 재난 시에 가동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같다. 그러나 그러한 중대본은 아직 한번도 가동되지 않았다.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폭염은 통제하기 매우 어려운 거대 재난이다. 아니, 거대 재난이 되었다.

기상청은 폭염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응하기 위해 ‘폭염백서’를 마련할 계획이다. 반가운 것은 폭염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에 더해 ‘폭염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백서에 담는다는 것이다. 폭염으로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한 노동자들, 쪽방촌 빈민들, 노인들 그리고 우럭·광어·쥐치들, 오리와 막 태어난 병아리, 고랭지에서 대대손손 시원하게 살다 더위라고는 처음 겪어본 고랭지 배추들. 과학자의 눈으로 이들이 삶을 다하지 못한 원인을 소상하게 기록해주기 바란다. 그래서 이번에는 부디, 폭염백서가 나오는 한겨울부터 폭염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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