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안이 공식 발표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 4월에 시민대표단이 참여한 연금개혁 공론화에서는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이 선택된 바 있다. 국회는 이 결과에 기초하여 연금개혁 협상을 어렵게 진행하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여야 간 협상을 직접 중단시켰다. 그 이후 몇 개월 만에 내놓는 정부 개혁안이니만큼, 발표 내용에 대한 궁금증은 크다. 얼마나 멋진 대안을 내놓으려고 시민공론화 결과까지 무시했을까?
연금개혁안을 통해 윤석열 정부는 국민들의 노후소득보장 현실에 대한 인식과 국정철학을 드러낼 것인 만큼, 그 구체적 내용과 표방하는 가치에 주목하게 된다. 더욱이 시민 공론화 연금개혁안과의 비교는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기사로 나온 정부 연금개혁안 윤곽을 보면 일단 출산 및 군복무에 대해 일정 기간 국민연금 보험료를 낸 것으로 인정해주는 크레딧 확대가 포함될 듯하다. 이는 그동안 수많은 위원회와, 시민 공론화 연금개혁안에서 한결같이 제안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것으로 정부 연금개혁안이 갖는 차별성은 드러나지 않을 것 같다.
가장 주목할 것은 국민연금액 삭감 문제다. 정부는 국민연금개혁안에 소위 자동조정장치라는 것을 포함시킬 가능성이 높다. 자동조정장치라는 어려운 말로 둘러대도 이는 사실상 국민연금액을 깎는 효과를 갖는다. 다만 연금을 얼마 깎을지 미리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다르게 한다는 뜻일 뿐이다. 국민연금 삭감은 삭감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장치를 도입해서 어떤 논리로 연금을 얼마만큼 깎으려고 하는지, 누가 그 대상이 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부안을 봐야만 가늠할 수 있다. 시민공론화가 당장 적용 가능한 구체적 대안에 관한 판단이었던 만큼, 정부안은 그에 상응하는 구체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고 그에 상응하여 정확하게 평가받는 것, 그것이 책임 있는 정부가 할 일이다.
다만 국민연금 평균액이 60만원을 약간 넘는 데다 앞으로도 보장 수준이 제대로 올라갈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얼마나 더 깎는 설계가 가능할지 의문스럽다. 더욱이 새로 연금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미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에게도 이를 적용할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근본적으로는 부동산이나 제대로 된 개인연금 없이 은퇴라는 소득절벽 앞에서 유일한 노후보장수단이 국민연금이 된 서민들에게 정부는 어떤 책임 있는 메시지를 내놓을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가능한 한 오래, 죽을 때까지 일하라는 메시지 말고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만약 정부가 강력한 재분배 효과를 가지는 국민연금을 삭감하면서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 같은 사연금으로 노후를 알아서 대비하라고 한다면, 이는 약자를 보호한다는 보수의 가치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한편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40만원’을 실현한다고 해도 기초연금 받는 노인의 범위를 줄인다면 기초연금으로 국민연금 삭감을 메꾸긴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10년 이상 보험료를 내야 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으로 최저생계보장조차 불가능하다면, 보험료를 내지 않고도 받는 기초연금을 제대로 올리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긴장, 재정안정과 소득보장의 긴장 속에서 해법을 찾는 데 필수적인 것은 국가의 노후보장 책임 강화다. 보수주의자인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빈곤 예방을 위해 국가가 국민연금에 개입해야 한다고 믿었고, 연금재정에 적극적인 지원을 했다. 집권 초부터 부자와 고소득자의 세금부담을 줄여온 현 정부가 연금개혁에서도 유사한 정책방향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연금재정 책임 강화를 통해 노후보장을 강화할지는 정부 연금개혁안과 시민공론화 연금개혁안 사이의 중요한 경계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