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영국의사협회지에 도발적인 논문 한 편이 실렸다. 민주주의가 건강에 이롭다는 내용이었다. 어쩐지 그럴 것 같기는 하지만, 그동안 이를 실증 자료로 보여준 연구는 거의 없었다. 논문은 170여개국 자료를 이용해 국민소득, 소득불평등 정도, 공공지출 규모 등을 보정한 상태에서도 민주주의 수준이 높을수록 평균수명이 길고 모성 사망률과 영아 사망률이 낮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때 민주주의 수준은 미국 프리덤하우스가 산출한 지표를 활용했다.
프리덤하우스는 1972년부터 설문조사를 통해 선거 절차와 다당제, 사회적 소수자 집단의 정부 참여, 집회·표현·결사·교육·종교의 자유, 법치, 자유로운 경제활동, 기회의 평등 같은 항목들에 대해 국가별로 점수를 매기고 그 결과에 따라 ‘자유’ ‘제한적 자유’ ‘부자유’ 세 그룹으로 국가들을 분류해왔다. 한국은 첫 조사인 1972년 ‘부자유’로 분류되었다가 이후 ‘제한적 자유’ 상태를 이어오다 1987년 이후 비로소 ‘자유’ 국가가 되었다. 사실 이 논문은 엉성한 방법론과 과도한 해석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건강결정요인으로서 정치의 역할, 건강과 정치를 잇는 기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보건학자들의 관심을 촉발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판된 또 다른 논문은 1958~1961년 중국의 대약진 운동이 가져온 대규모 기근 사례를 들어 민주주의와 건강의 관계를 분석했다. 3000만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이 비극의 시작은 어쨌든 생산력을 증대하고 인민들의 삶을 낫게 만들려는 정부의 야심이었다. 하지만 정부 감시와 비판 역할을 할 수 있는 세력, 대표적으로 자유 언론과 야당의 부재는 파국의 중요한 기여 요인이었다. 흉년이 들고 당의 농업정책, 경제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도 지역 공산당 간부들은 권력에 잘 보이기 위해 생산량을 계속 과장해서 보고했다. 중앙에서는 이런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성과를 과시하며 농촌에서 더 많은 식량을 징발하고 심지어 식량 수출을 늘리기까지 했다. 이를테면 1958년에 22만3000t이던 곡물 수입량은 식량 사정이 악화된 1959년에 2000t으로 급감했고, 수출량은 1957년 190만t에서 1958년과 1959년에 각각 270만t과 420만t으로 급증했다. 곡물 생산량 자체가 큰 폭으로 줄어들고,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던 시기였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3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를 감시하고 민의를 대변할 수 있는 세력이 없었기 때문, 즉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도 비슷한 결론을 도출했다. 민주주의가 “말라리아를 고치는 키니네처럼 자동적인 질병치료제는 아니지만” 대기근 같은 사회적 재난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자유 언론은 정부가 사회적 필요에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내도록 유도하고, 민주적 선거는 여당이 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하고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개혁 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정부의 의료대란 인식은 대단히 기이하다. 거대 야당이 정부 실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최소한 의료대란에 대해서만은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대다수 언론이 한목소리로 정부의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의 지지율도 그 어느 때보다 낮다. 그런데 정부는 문제가 과장되었다며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는 중이다. 간신배들에게 둘러싸여 구중궁궐 바깥을 전혀 알 수 없거나, 거짓으로 점철된 종이보고서 말고는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는 시절도 아닌데 말이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스마트폰으로 포털사이트 뉴스 제목들만 훑어봐도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 텐데, 대체 무슨 일일까?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논문과 책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이 상황의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