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도 되게 하지 말지어다

2024.09.01 20:20 입력 2024.09.01 20:25 수정

고속도로에서 옆 차선을 지나던 나와 눈이 마주친 그 돼지는 비좁은 운반트럭에 작게 뚫린 사각 구멍에 가로로 쳐친 쇠막대를 필사적으로 물어뜯고 있었다. 어느 축산시설에서 길러지다 도축장으로 이송되던 중이었을 게다.

몸을 돌아눕기조차 어려운 감금틀에 갇혀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반복당하는 엄마 돼지에게서 태어나 겨우 6개월 남짓 살았을 것이다. 생애 단 한 번도 푸른 풀밭을 밟아 본 적도 없을 것이다. 하늘조차 볼 수 없는 감옥과 같은 축산시설을 떠나 실려 간 곳에서는 먼저 이송되어 와 도축 대기장에 집결해 있는 다른 돼지들을 만날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곧 닥칠 일을 알기에 두려움에 차서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하나 둘 도축장 안으로 들어간 돼지는 전기충격을 당할 것이고 이내 어느 곳의 단두대에서 머리가 잘린 무고한 정치범처럼 머리가 댕강 잘릴 것이다. 동강난 몸들은 분리되고 천장에 붙어 있는 컨베이어 벨트에 걸린 쇠갈고리에 대롱대롱 걸릴 것이다. 따뜻하게 몸속을 타고 다녔던 붉은 피가 갈고리에 걸린 머리와 몸통에서 도축장 바닥으로 주륵주륵 흘러내릴 것이다. 피가 다 쏟겨 나간 몸은 이리저리 난도질당하고 잘린 채 스티로폼 포장지에 담겨 신선식품 진열장에 진열될 것이다. 남은 부위는 가공육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익명의 돼지는 이제 돼지라는 종명조차 잃은 채 삼겹살이나 족발 또는 소시지나 햄으로 불리며 인간의 밥상에 오를 것이다.

이런 일이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돼지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이 모든 불행은 일어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수많은 우리 인간들은 소, 돼지, 닭 등의 동물 사체 먹는 일을 단념하기 어려워한다. 단백질과 맛에 대한 고정관념이 큰 것이 이유다. 단백질은 근육을 만들어 주고 맛은 포기하기 어려운 삶의 활력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영양소는 기본적으로 식물에게서 온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구 표면의 29%가 땅이고 그중 71%만이 인간이 거주 가능한 지역이다. 거주 가능한 지역의 50%가 농업에 사용되는데 이런 땅 중 77%가 축산업에 쓰이고 있다. 인간이 먹을 식물을 키우는 데 쓰이는 땅은 겨우 23%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도 인간이 필요로 하는 단백질의 63%를, 칼로리의 83%를 이 식물들이 제공해주고 있다. 근육조차 식물이 만들어 줄 수 있다. 소와 돼지의 근육은 말할 것도 없고 육식을 하지 않는 비건 보디빌더들의 근육도 식물이 만들어 준 것이다. 소시지, 베이컨, 햄 같은 맛 좋은 가공육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이미 한국 남성 5명 중 3명이, 여성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리고 있다. 우리가 먹는 것은 맛뿐만이 아닌 것이다.

‘죽여도 되게 하지 말지어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가 우리에게 건네는 문장이다. 다른 동물을 끔찍하게 도살해 먹기 위해 참혹한 방식으로 강제로 살아있게 만드는 인간 문명은 윤리적이지도 심지어 이기적이지도 않다.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 열대밀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출용 ‘육류’ 생산을 위해 황폐화되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배출된 온실가스가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들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살던 대로 산다면 앞으로의 여름은 갈수록 더 뜨겁고 습할 것이다. 이미 그 비용을 우리 자신이 치르는 중이다.

박이은실 여성학자

박이은실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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