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지켜낸 방송 공공성 유지되어야

2024.09.01 20:22 입력 2024.09.01 20:26 수정

지난 7월31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 2인은 임명 당일 전격 작전을 치르듯 공영방송 이사들을 추천하거나 임명했다. 5인 합의제 기관의 기본 구성도 못 갖춘 기형적 2인 체제의 방통위가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담보할 이사진 후보들을 제대로 검토할 여유도 없이, 심지어 후보들의 결격사유 여부도 확인 안 된 상태에서 전격 결정했다. 그래서 대통령실에서 낙점한 명단에 따라 찬반 투표만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임명되거나 추천된 이사들 중엔 과거 공영방송 탄압에 일역을 담당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들도 포함돼 있었다. 방통위와 공영방송의 공공성이 파괴되는 순간이었다. 특히 이사 교체 실패로 이루지 못한 MBC 장악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법부가 제동을 걸었다.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이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이 인용했기 때문이다. 본안 판결이 난 후 30일까지 방통위의 임명 처분을 정지한다는 결정이었다. 서울행정법원 판결의 핵심은 대통령이 임명한 2인만의 결정에 문제가 있고,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적법한 절차를 거친 이사 임명이 필요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현재 법체계에 따르면 기존 이사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방통위가 5인으로 구성되는 합의제 기관이라 합치의 원리가 작동해야 하고, 이것이 어려울 때 보조적 수단으로 다수결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다수결 원리를 적용할 땐 의사정족수, 의결정족수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봤다. 또 방통위는 대통령 지명 2인, 여당 추천 1인, 야당 추천 2인을 대통령이 임명해 정치적 다양성을 반영하는 기구인데, 정치적 다양성을 보장하려는 이유는 방통위 설치법의 제1조에 명시한 방송의 자유와 공정성, 공익성 등을 보장하려는 데 있다고 봤다. 그렇기에 대통령이 지명한 2인만의 방통위가 7월31일 결정한 의결은 방송의 공공성이라는 방통위 설치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의 입법 목적을 저해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재판부는 방송문화진흥회가 민주적이며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의 진흥과 공공복지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법상 재단법인이고, 방문진 이사로서 수행하는 직무의 내용이 언론의 자유 내지 방송의 자유 보호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봤다. 따라서 이사 임명은 방통위가 규정한 절차를 엄격히 지키고, 방송에 관한 전문성,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이라는 방문진 이사의 임명 기준과 결격사유 등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방통위 결정은 그런 절차와 고려가 적절히 이루어졌는지 따져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방문진법은 방문진의 특별한 공적 책임, 그 기능과 직무 내용의 중요성을 고려해 임원이 임기가 만료되더라도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그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여 직무의 연속성을 도모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임명 절차가 적절한지 따져볼 여지가 있는 방문진 이사 임명에 관한 본안 소송이 끝날 때까지 현 방문진 이사의 임기가 유지되지 않으면 현 이사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방통위가 포기했던 방송의 공공성을 사법부가 지켜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가혹한 탄압과 저항의 피비린내 나던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을 차단했다. 이번 재판부의 결정은 방송 공공성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설치의 기본 목적을 위배한 방통위는 당연히 사법부의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방통위는 즉각 항고하겠다고 했다. 후안무치한 일이지만 그간의 행태로 보면 진행될 것이다. 결국 방송 공공성 수호는 다시 사법부 몫으로 넘겨졌다. 차후 항고법원인 서울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은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을 유지해 사법부의 정의와 방송 공공성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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