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전기는 불법으로 흘렀다

2024.09.02 20:38 입력 2024.09.03 09:46 수정

‘907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지난달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선포식을 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907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지난달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선포식을 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지난 8월21일 충남 태안군 가의도에 번개가 쳤다. 하필 발전소 근처 전봇대 통신 계량기가 번개에 맞아 가의도 일대 전기가 끊겼다. 폭우가 쏟아진 밤이었다. 섬마을 주민 75명은 높은 습도와 더위로 고통받았다. 게다가 주민 대부분은 고령으로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정전은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했다. 전기는 10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복구됐다.

가의도의 한 주민은 8월27일 서울의 섬 여의도 국회 앞으로 와 이날의 참상을 알리고, 한국전력(이하 한전)에 책임을 물었다. “한전은 숙련된 노동자들을 해고함으로써, 우리 전력시스템의 안정성을 스스로 무너뜨렸습니다.” 바다를 건너온 전국의 섬마을 주민 150여명도 그의 옆에 있었다. 한전 위탁업체 JBC에서 일하다 집단해고된 노동자들이다. 한전은 지난 30여년간 전국 66개 섬마을 전기 공급과 관리를 JBC라는 기업에 임의로 맡겼다. 한전 퇴직자들이 ‘OB들의 친목과 소통의 커뮤니티’라는 구호를 내걸고 만든 조직 한국전력전우회가 100% 출자한 회사다. JBC 직원에 대한 실질적인 업무지시는 한전이 했고 JBC는 사실상 인력 공급 관리 역할만 했다. 그러나 전력업무는 파견허용 업종이 아니다. JBC가 파견업체인 것도 아니다. 불법파견이었다. 이에 법원은 JBC에 소속된 노동자가 한전 소속 근로자라는 판결을 내렸다. 섬마을 전기가 불법으로 흘렀다는 것이 드러났다.

상식적인 회사라면 법원 판단을 존중할 것이다. 그러나 한전은 항소는 물론 JBC와의 위탁계약을 종료하고 노동자들에게 자회사인 한전MCS로 옮기라고 했다. 전기검침, 전기요금 관리 등을 하는 회사다. 불법파견을 저지른 기업이 늘 보여준 꼼수다. 한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노동자들에게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포기하고 다시는 소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강요했다. ‘부제소특약’이라고 한다. 한전은 긴 재판과정을 견디기 힘든 노동자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고만 한다. 노동자들은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자회사에서 참고 일할 수는 있지만, 어렵게 밝힌 진실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전은 결국 소송 포기를 약속하지 않은 민주노총 조합원 184명을 집단해고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섬마을 주민을 위해 30년간 헌신적으로 일한 숙련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다. 섬마을 노동자를 잘라낸 것은 섬마을 전기를 잘라낸 것과 같았다. 가의도 사태는 시작일 뿐이다.

한전은 우리 모두에게 필수적 에너지인 ‘전기’를 다루는 공공기관이다. 그래서 한전 홈페이지에는 사회적 가치 10대 행동강령이 게시되어 있다. “사회규범과 모든 제반 법규를 준수한다. 공공의 이익과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한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한다.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함께 일하고 좋은 기업문화를 조성한다”라는 선언들이다. 사회적가치위원회도 만들어 진보적 활동을 하는 인사도 앉혀놓았다. 한전 홈페이지에는 사회적 가치가 흐르지만 한전의 노동현장에는 정의도, 상식도 흐르지 않는다. 9월7일 서울 강남에서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를 건 기후정의행진이 벌어진다. 강남의 행진이 전국의 섬마을과 노동자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연대의 전선을 놓아야 할 때다.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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