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1993년 5월 발간된 <나의문화유산 답사기> 초판 서문에 남겨 유명해진 글월이다. 저자 유홍준 교수는 사랑의 감정으로 문화유산을 답사하면서 나는 감히 국토박물관의 길눈이가 되어 나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국토의 역사와 미학을 일상 속에 끌어안으며 살아가는 행복을 나누어 갖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고 썼다. 독자들은 출간 이래로 30년 동안 책을 들고 우리 국토에 아로새겨진 문화유산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는 신간 <공부>에서 ‘평소에 알면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자꾸 알아가려는 노력이 축적될수록 이해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공부와 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석학들의 가르침으로 기후문제를 풀어보자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물론 올여름 전 세계가 무시무시한 폭염을 겪었다. 추석이 낼모레인데 거리에 나서기가 무서울 정도로 뜨겁다. 어서 찬 바람이 불어 이 더위가 가시기를 바랄 뿐이지 어떻게 폭염을 억제할 것인지, 우리 어른 세대는 어떻게 이 더위를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을지 책임감을 논하는 자리는 부족한 현실이다. 대개 날씨를 걱정하지만 이것이 내가 특별히 해결에 동참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유지의 비극이라고도 하지만 사실 기후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고 배울 만한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모르면서 책임감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본 공식을 모르면서 응용문제를 풀 수는 없는 법이다. 설령 안다고 해도 행동으로 연결되려면 강력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기후문제가 심각하다는 확신을 주고 있나, 누가?
우리는 오랜 시간 공교육 울타리 안에서 교육을 받는다. 매년 폭염 기록을 경신 중인데 학교에서 기후환경교육은 선택의 영역이고, 최근에야 비로소 몇 종류의 교과서가 출간된 형편이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 미래세대를 위한 기후수능이라는 제목으로 기후학력을 테스트했다.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기에 자원한 중고생 100명의 사전신청을 받아 함께 치렀다. 전국의 중고생 263만여명 중 서울·경기에 거주하는 학생들이라 대표성을 갖기는 어렵지만 반응은 남달랐다.
점수 고저를 떠나 참가한 학생들의 소감이 남달랐다. 학교에서 기후환경문제를 배우고 싶은데 기회가 없다, 수업시간에 배달용 플라스틱 용기 문제 같은 환경문제를 풀어보는 프로젝트형 수업을 해보고 싶은데 교실에 앉아만 있어서 답답하다는 의견들이 분분했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이우고등학교 2학년 진세연 학생은 자기 학교와 달리 다른 학교는 대학을 위해 국·영·수만 공부한다고 해서 걱정되고, 쓰레기를 분리배출하면 착한 아이로 인정받는 양심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해결해야 하는 책임을 환경교육을 통해 배웠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제 어른들만 잘하면 될 것 같다. 지난 4일 국회 내 기후위기 시계를 수소충전소 옆에서 국회를 방문하는 기관이나 일반 시민도 자주 마주칠 수 있는 의사당 앞으로 옮기는 행사가 있었다. 시계 위치만 바꿀 게 아니라 의원님들도 이 시험을 한번 치러봤으면 좋겠다. 공교육의 정식 과목으로 기후수능을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