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한 지 2년쯤 지난 후배가 찾아왔다. 가난한 부모를 만나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동차 만드는 공장에서 40년 넘도록 일만 하고 살아온 후배다. 일밖에 모르고 살아왔다는 말이 어울리는 후배다. 왜냐하면 하루라도 지각을 하거나 결근을 하면 마치 큰일이라도 벌어지는 것처럼 부지런히 살아왔기 때문이다.
“선배, 정년퇴직하고 어물어물하고 있는 사이에 2년이 바람처럼 후딱 지나갔어요. 앞으로 80세까지만 살아도 15년 넘게 살아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곁에서 듣고 있던 후배의 아내가 말했다. “우리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고는 할 일이 없어 맨날 빈둥거려요. 잘하는 거라곤 자동차 만드는 일밖에 없잖아요. 특기도 없고 취미도 없어요. 맨날 회사 다니는 일 말고는 한 게 없거든요. 제가 요즘 무릎이 시원찮아 수영장에 가는데, 수영장까지 따라와서는 밖에서 저를 기다리며 혼자 빵을 사 먹고 있어요. 젊었을 때는 먹고사느라,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함께 다닐 짬이 없었지요. 남편 생각하면 안타까워요. 육십이 넘어서야 저를 따라다니니 기가 차잖아요.”
두 사람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가 한국농정(2024년 8월5일) 신문을 쑥 내밀었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 기사 한번 읽어 봐요. 경기도 귀농귀촌지원센터가 도내 베이비붐 세대(1955~1974년생) 대상으로 ‘농촌 한 달 체험’ 프로그램을 열어 성황리에 마쳤대요. 농촌 마을 네 곳을 선정해서 지역민과 교류할 수 있도록 임시로 머물 수 있는 집을 주고, 영농실습도 한대요. 도마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귀농·귀촌하려는 도시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가지 지원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고 해요. 한번 알아보면 좋겠어요.”
나는 아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년퇴직을 했거나 앞두고 있는 사람들은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퇴직금으로 받은 돈으로 장사를 시작하여 다 날린 친구도 있고, 퇴직하자마자 깊은 병을 얻어 병원에 누워 있는 후배도 있다. 나이 예순이 지나면 살아온 흔적만큼 몸과 마음이 여기저기 성한 데가 없다. 도시에서 하루하루 먹고사느라, 아니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애썼겠는가? 여태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살았으니 ‘밥’이 기다리고 있는 농촌(자연)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다독거리고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무턱대고 돈을 들여 집을 짓거나 땅을 사지 말고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참여해 보면 어떨까?
정동주 시인 말씀처럼 우리 옛사람들은 하늘에 그 많고 많은 별마다 생명 하나씩 들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은 별에서 왔고, 별에서 온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농촌을 이루고, 가정과 나를 세워 살았다. 20년 전, 산골에 빈집과 묵은 땅을 빌려 농사를 시작할 때, 마을 어르신이 찾아와 일러 주셨다. 농부(農夫)는 별을 노래하는 사람이라, 죽으면 별이 데려간다고. 그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농사일이 몹시 고달프거나 흉년이 들어 한 해 먹고살 걱정이 산처럼 쌓일 때마다 그 말씀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힘이 솟았다.
후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아내는 호박 이파리를 찌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구수한 냄새가 작은 흙집에 가득했다. 이게 사는 맛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