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경쟁 완화 열쇠는
서울대 학벌을 공유하는
신박한 입학제도가 아닌
재정투입 통한 교육품질
상향평준화에 있다
서울대 못지않은 대학이
여러 개 늘어나는 것은
나라에 좋은 일이다
지역 거점대학 수준 올라
지역 상위권 학생들이
많이 진학하게 되면
서울 학생은 상대적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 편해진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서울 학생·학부모를 위한
정책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교육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진보적이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교육문제는 과열경쟁인데, 보수는 경쟁을 자연스럽거나 불가피한 것, 심지어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저명한 사회생물학자에게 한국의 교육경쟁에 대해 질문하면 ‘인간의 본성상 어쩔 수 없다’는 요지의 대답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교육경쟁에 대한 보수의 입장이기도 하다.
진보는 교육경쟁이 어떤 나라에서는 심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약하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즉 사회적 환경과 조건에 따라 교육경쟁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한국의 교육경쟁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나는 한국에서 과열된 교육경쟁으로 인한 사회적 고통과 비용이 워낙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진보적 입장에 서는 것이 논리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겼다.
여기까지가 2010년대 초까지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후 나는 점차 한국의 진보세력이 교육경쟁을 해결하는 데 별로 유능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2012년 대선 기간의 경험이었다. 참여연대에서 주최한 교육정책 토론회에서 나는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에 의문을 제기했다. 민주노동당에 이어 민주당에 채택된 이 정책은 서울대를 포함하는 주요 국립대를 묶어 공동입학·공동학위제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나의 의문은, 그렇게 되면 기존에 서울대가 차지했던 지위를 연세대·고려대가 차지할 뿐 결국 대입경쟁이 크게 감소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의 문제제기에 대한 반응은 ‘그럴 리가 없다’는 반론이거나(반론의 근거는 사실상 없었다) 또는 ‘너는 진보가 아니다’라는 공격이었다(실제로 공개적으로 들은 말이다).
한국의 진보는 대입경쟁을 ‘학벌’을 향한 경쟁이라고 본다. 사실 이건 너무 상식적인 얘기라서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게 이상해 보일 것이다. 그런데 대입경쟁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면 대학은 일종의 ‘인증기관’이 되어버린다. 즉 대입경쟁이란 ‘명문대 출신’이라는 스탬프를 받기 위한 경쟁이고, 특정한 스탬프가 찍힌 집단에 권력과 영향력이 집중되고 후광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 사회악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은 단순히 ‘인증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이다. 즉 대학마다 교육의 질이 다르고, 이에 따라 입학할 때의 능력치가 졸업할 때 상대적으로 많이 높아질 수도 있고 적게 높아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만 19세가 되는 시기에 100m를 10초대에 주파하는 A그룹과 11초대에 주파하는 B그룹을 나눈다고 해보자. 기존의 학벌 비판은 A그룹과 B그룹을 구분해 스탬프를 찍어주는 것에 주목한다. 기록이 10.9초인 사람과 11.0초인 사람의 차이는 미미하다. 통계적으로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같은 미세한 차이 때문에 A그룹과 B그룹의 사회적 평판이나 영향력이 크게 차이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이것이 학벌 비판의 핵심이다. 그런데 A그룹과 B그룹은 서로 다른 스탬프를 받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향후 4년간 서로 다른 품질의 교육을 받는다. 이를테면 A그룹은 태릉선수촌에서, B그룹은 시립스포츠센터에서 훈련받는 것이다. A그룹에 더 좋은 장비와 코치와 프로그램이 붙기 때문에, 19세 때 존재했던 A그룹과 B그룹의 평균적인 능력 차이는 23세 때 한층 증폭되는 것이다.
대학은 인증기관 아닌 교육기관
이것이 문재인 정부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했을 때 드러난 일이었다. 공기업에서 출신대학을 가리고 신입사원을 선발했는데, 명문대 출신 비중이 별로 낮아지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블라인드 채용’과 동시에 시행한 ‘지역인재 채용’의 효과를 배제하면, 사실상 변화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대기업 인사·채용 담당자들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요새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과정에 명문대 출신에게 가산점을 주지 않는데, 그래도 뽑아놓고 보면 명문대 출신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에서 제공하는 교육의 품질은 어떻게 측정하나? 이를 잘 보여주는 지표가 존재한다. 학생 1인당 교육비, 즉 대학이 1년에 학생 1인당 얼마를 교육을 위해 투자하는지를 (연구비는 빼고) 보여주는 지표다. OECD는 국가별 평균치를 수합해 보고서에 싣고, 한국의 대학별 수치는 ‘대학알리미’에 공지된다. 가장 최근인 2024년 공개치를 보면 서울대가 학생 1인당 투입하는 교육비는 연간 6059만원이고, 연세대는 4084만원, 한양대는 2617만원, 중앙대는 1811만원이다. 입학하기 어려운 상위권 대학들 사이에도 엄청난 격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재정의 차이가 교육품질의 차이를 일으키고, 이로 인해 입학할 때 존재했던 그룹별 능력치의 격차가 졸업할 때에는 더 커질 것이다.
대학서열은 자연질서가 아니다. 재정투자를 충분히 하면 신생대학임에도 금세 최상위권 서열에 오르는 것을 우리는 봐왔다. 학부 기준 1980~1990년대 개교한 포항공대, 카이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와 2010년대 이후 개교한 광주과기원, 대구경북과기원, 울산과기원, 한국에너지공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입경쟁이 ‘보다 높은 학벌’을 위한 경쟁이라기보다 ‘보다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한 경쟁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비유하자면 태릉선수촌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인 것이다. 그렇다면 재정투자를 늘려 태릉선수촌 못지않은 기회를 많이 만들면 그만큼 대입경쟁은 줄어들 것이다.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집대성한 정진상 경상대 교수의 저작물에는 예산이나 교육품질에 대한 언급이 전무하다. 하지만 대입경쟁을 완화하는 열쇠는 서울대의 학벌을 공유하는 신박한 입학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정투입을 통한 대학 교육품질의 상향평준화에 있다.
투자 늘려 교육품질 높이는 게 관건
나는 2020년 저서 <문재인 이후의 교육>에서 대학서열에 명성·학연·위치 등도 영향을 주지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재정임을 밝혔고, 마침 2021년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내놓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상향평준화의 연장선상에서 적극 지지했다. 이 같은 아이디어는 주진형 전 한화증권 대표가 이미 2017년에 펴낸 <경제, 알아야 바꾼다>에서 역설했던 것이기도 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서울대 못지않게 좋은 학교를 더 많이 만드는 겁니다. 카이스트도 겨우 10년 만에 최고 대학이 되었잖아요? 서울대가 돈을 더 많이 받아서 좋아졌다면 지방 국립대에도 투자를 많이 해서 서울대 못지않게 만드는 식으로 개선해야 합니다.”(249쪽)
8월27일 서울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한국은행이 ‘지역별 비례선발’을 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서울대 등 일부 상위권 대학에서, 대부분의 신입생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대로 선발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접근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다. 노무현 정부에서 내놨던 내신 위주 대입제도(2008학년도 대입 개편안)에서 이미 경험했다. 한국의 내신성적은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내신성적 위주로 선발하면 ‘균등선발 효과’가 발생한다. 학력수준이 높은 학교든 낮은 학교든 똑같이 상위 4%가 1등급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이 ‘전국’ 단위가 아닌 ‘학교’ 단위로 분절화되자, 학생들이 체감하는 경쟁 강도는 높아졌다. 처음 적용된 2005년 고1 학생들이 첫 중간고사를 보고 자살하는 사태가 속출했고, 역사상 최초로 학생들이 주도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마찬가지로 ‘지역별 비례선발’을 통해 경쟁이 분절화되면 균등선발 효과는 발생하겠지만 체감 경쟁 강도는 낮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이러한 접근을 “과열 입시경쟁”의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심각한 오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안타까운 낙마로 인해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다. 진보 성향 후보가 여러 명 출사표를 던졌고 앞으로 단일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중 한 명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답하는 게 좋을까요?” 나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서울대 못지않은 대학이 여러 개 늘어나는 것은 나라에 좋은 일입니다. 세계 100대 대학에 한국 대학이 두세 개밖에 없는 것은 창피한 일이지요. 그리고 지역 거점대학의 수준이 높아져서 지역의 상위권 학생들이 많이 진학하게 되면, 서울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 편해집니다.” 그렇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서울 학생과 학부모들을 위한 정책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