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21세기의 학문은 경제학과 정치철학을 다시 하나로 결합시킨 ‘정치경제학’이다
나아가, 인류가 전 지구의 자연을 공유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의 산업사회에서는 ‘지구정치경제학’이 생겨나야만 한다
진정한 의미의 ‘부’와 ‘좋은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 근원적인 철학적 문제서 구체적 현실 정책까지 연결시킬 지구정치경제학의 부활이 필요하다
갑자기 밀어닥친 가을이 감당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이번 여름은 길고 더웠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펄펄 끓었다. 지난 6일 유럽연합의 기후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의 발표에 따르면, 올 8월의 세계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51도가 상승했다. 게다가 2023년 9월부터 올해 8월까지의 평균기온 또한 산업화 이전보다 1.64도 높아졌다. 지구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이야기되는 1.5도 상승의 한계가 이미 뚫린 것 아니냐는 암울한 가능성을 던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 지난여름은 영원히 추억으로 남을 가장 시원하고 짧은 여름이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엉뚱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이 긴 여름의 끝에서 정치경제학의 부활이 절실하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긴다. 먼저 정치경제학이라는 말뜻부터 설명해야겠다. 우리나라에서 이 말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일 때가 많았고, 어떤 이들은 이를 정치학과 경제학을 결합하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쓰고도 있지만, 내가 말하는 의미는 20세기 초까지 통용되던 고전적인 의미, ‘좋은 삶을 추구하는 학문’으로서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뜻이다.
‘이코노미’라는 말의 어원인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는 본래 ‘집안 살림’을 뜻하는 말이었다. 가족과 가족 성원 모두의 ‘좋은 삶’을 추구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조달하고 운영해야 하느냐의 기술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16세기부터 이것이 비단 가정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나라 살림’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질문이라는 깨달음이 있었고, 이에 나라에 적용되는 살림살이의 연구라는 의미에서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는 말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래서 19세기 말까지도 정치경제학은 (국가) 윤리학의 일부였다. 애덤 스미스가 도덕철학을 담당하는 교수였다는 것은 그래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존 스튜어트 밀이라는 정치철학의 거장이 또한 19세기 경제학의 금자탑이라 할 <정치경제학 원리>를 집필한 것 또한 그래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들은 모두 ‘사회 전체의 좋은 삶’이라는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생산과 분배와 소비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가를 해명하는 것이 정치경제학의 본연의 목표라는 것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경제학은 20세기 들어오면서 정치철학과 경제학으로 갈라져 버렸고, 여기에서 비극이 시작됐다. 경제학에서는 이제 ‘사회 전체의 좋은 삶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 ‘경제성장과 자본축적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들어서 버렸고, 경제학 전체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 버렸다. 경제성장과 자본축적이 과연 우리들의 ‘좋은 삶’을 위한 충분조건인지, 그 과정에서 오히려 ‘좋은 삶’이 파괴되는 것은 아닌지의 질문은 묵살되어 버렸다.
경제·정치철학으로 쪼개지며 비극
정치철학의 운명도 이보다 낫지 않았다. 사람들의 실제 생활을 지배하는 질문인 생산과 분배와 소비가 어떻게 조직되고 있는가는 오롯이 경제학에 떠넘겨 버린 상태에서, ‘공동체의 좋은 삶’에 대한 논의가 무슨 알맹이 있는 내용을 담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기계제 생산에 기초한 산업사회에서의 경제 생활은 끊임없이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건만, 이에 대한 실시간에 가까운 파악 없이 고전적 저작들만 파고드는 방법으로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오늘날의 정치철학은 경전에 나오는 개념과 언어들을 황소처럼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지성사 연구든가 아니면 ‘시장’이니 ‘능력’이니 하는 현실과 유리된 개념들로 공허한 주장을 지루하게 반복하는 선전의 장으로 바뀌어 버렸다. 오죽하면 피터 라즐렛 같은 이가 1956년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당분간 정치철학은 죽었다’라고 선언하기까지 했겠는가?
인류의 지성이 정치경제학을 경제학과 정치철학으로 찢어놓은 대가는 크고도 참담하다. 경제 시스템은 그 방향을 인도해 줄 ‘좋은 삶’의 내용 없이 물질적인 부와 수치상의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로 돌진하는 눈먼 기차가 되었다. 시장경제의 방향을 잡고 인도하여 ‘공동체의 좋은 삶’을 달성할 수 있는 정치철학의 지적·도덕적 혁신이 멈춘 상태에서, 정치 시스템은 ‘경제의 시녀’로 전락했고, 오히려 그러한 경제 시스템의 폭주에 편승하여 이를 팔아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가들의 게임만 난무하게 되었다. 특히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불리는 1980년대 이후의 지난 40년간 이는 너무나 익숙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치러야 하는 대가를 적어놓은 계산서는 하지만 너무나 빨리 날아들었다. 기후위기는 그 계산서에 적힌 목록의 윗자리를 차지한 한 항목에 불과하다. 극심한 불평등, 사회적 갈등, 민주주의의 파괴, 인구학적 위기 등의 문제들이 줄줄이 그 아래에 적혀 있다.
그 대가는 크고도 참담
애덤 스미스나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20세기 이전의 ‘정치경제학자들’이 이 상황을 보면 무어라고 할까? 그들도 사회에서 비생산적인 요소들을 제거해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과 이를 통해 물질적 부의 증대를 이루는 것을 최고의 관심사로 삼았던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2024년에 되살아나 우리와 함께 이번의 길고 더운 여름을 겪었다면, 분명히 이렇게 물을 것이다. 이것이 ‘좋은 삶’인가? 지구와 사회와 개인을 모두 황폐하게 만들면서 더 많은 소비와 더 큰 경제성장률에 집착하는 것이 생산과 분배와 소비를 조직하는 올바른 방법인가? 밀과 같은 정치경제학자는 분명히 당장 성장을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는 물질적 결핍을 벗어나기 위해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것을 분명히 강조했지만, 영원한 경제성장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사회 전체에 불안정과 불평등과 같은 달갑지 않은 상태를 불러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류가 일정한 물질적 풍요에 이르면 경제성장이 정지하는 이른바 ‘정상 상태(stationary state)’에 도달하는 것이 ‘좋은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21세기의 학문은 경제학과 정치철학을 다시 하나로 결합시킨 ‘정치경제학’이다. 막연한 정치 이념이 아니라, 맹목적인 물질적 부의 팽창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좋은 삶’을 위해서는 생산과 분배와 소비를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가를 명시적으로 중심적인 질문으로 삼아 현실과 이상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역동적인 학문이다. 한걸음 나아가, 이제는 그 고민해야 할 ‘좋은 삶’의 규모가 19세기 이전처럼 한 나라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80억의 인류가 전 지구의 자연을 공유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의 산업사회에서는 굳이 말을 만들자면 ‘지구정치경제학(global political economy)’이 생겨나야만 한다. 진정한 의미의 ‘부’란 무엇인지, 그것이 ‘좋은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수단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 근원적인 철학적 문제에서 구체적인 현실의 정책까지를 연결시킬 수 있는 (지구)정치경제학의 부활이 필요하다.
책 두 권을 권하고 싶다. 먼저 여성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가 저술하고 내가 번역한 <도넛 경제학>이다. 경제성장과 자본축적이라는 20세기 경제학의 우상을 벗어나 자연의 한계를 존중하면서 모든 이들이 최소한의 사회적 부에 동참할 수 있는 ‘좋은 삶’의 경제학을 모색하는 명저이다. 또한 경제학자인 동시에 정치철학자인 프레드 챈들러의 <자유와 평등>(가제) 또한 내가 번역을 마무리하여 출간을 준비 중이다. 이 책은 존 롤즈의 정의론에 기반하여 자유, 평등, 연대라는 3대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새로운 정책과 제도들로 이루어진 경제 시스템의 밑그림을 포괄적으로 제시한다.
각종 위기만 닥쳐오는 것이 아니다. 한쪽에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적인 혁신과 모색이 경제학에서도, 정치철학에서도 바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24년, 이 길고 더운 여름의 끝에서 정치경제학의 부활을 기다린다.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대안적 사회의 정치경제 질서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와 활동을 병행해 왔다. 저서로는 <위기 이후의 경제학> <비그포르스, 잠정적 유토피아와 복지국가>가 있으며, 역서로는 <도넛 경제학> <21세기 기본소득> <균형재정은 틀렸다: 현대화폐이론 입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