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숨겨진 폐해
미국 대선이 5주 앞으로 다가왔다.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위대한 미국 재건을 위해 중국에는 60% 관세, 그 외 국가에는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벼른다. 더 이상 자유무역은 없다며 환율전쟁까지 예고한다. 뭐, 따지고 보면 해리스 부통령도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정책을 펼칠 테니 별다를 거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난 트럼프의 폐해가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트럼프는 공화당이지만 전통 보수는 아니다. 보수가 지켜왔던 시장자율, 자유무역, 중앙은행의 독립성 등은 가볍게 무시한다. 트럼프가 독립성이 보장되는 미국 연준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건 유명하다. 자신의 집권기간에 현재 연준 의장인 파월이 금리를 계속 올려서 주가가 약세를 보이자 유례없는 의장 해고까지 검토했다. 그래서 우파 포퓰리스트의 상징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게 파격의 통쾌함을 주면서 다른 나라 정치인들에게 퍼져 나간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롤모델이 절실한 사람들이다. 남미의 트럼프라 불리는 아르헨티나 밀레이 대통령은 심지어 중앙은행을 없애겠다고 했는데 이게 순전히 자기 생각이겠나. 트럼프가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 보수 정치인, 심지어 야당인 민주당에 주는 폐해도 만만치 않은 거 같다. 현재 사례를 보자.
트럼프는 자기의 보호무역정책이 다시 미국을 강하게 만들 거라는 과잉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논리는 없고 선동만 있다. 자기가 재집권에 실패한 건 고금리로 자신의 보호무역을 방해한 파월이다. 더 강한 보호무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자유무역은 없다”고 외치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트럼프의 경제책사) 같은 사람의 말만 귀에 들어온다. 그런데 미국은 국내총생산에서 수출과 수입을 합친 대외 비중이 27%밖에 안 되는 나라이다. 전 세계 평균이 63%, 한국은 무려 97%인데 말이다. 이런 국가의 대통령이 보호무역이 경제의 만병통치약이라고 외치고 있다. 1980년대 보호무역의 상징인 플라자합의는 일본을 흔들었을지언정 미국을 다시 강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현 정권과 일부 민주당 의원은 금투세 폐지(유예)를 외치고 있다. 전체 생산연령인구의 0.4%인 15만명 고액자산가의 세금을 없애면 주가가 올라 전체 생산연령인구의 39%에 달하는 개인투자자 1400만명이 혜택을 누린다는 논리다. 와, 이런 기적의 경제정책이 있는 줄 몰랐다. 1870년부터 2016년까지 17개 선진국의 국내총생산에서 시가총액(상장주식 가치)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1990년 정도까지는 그 비중이 33% 정도였고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주식시장도 성장했다. 실물과 금융이 나름 발을 맞춘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 주식시장에 빅뱅이 일어나서 2000년에 이 비중이 무려 100%가 되었다. 경제가 성장하는 것보다 주식시장이 훨씬 커진 것인데 경제의 체질은 튼튼해지지 않고 주가만 오른 것이다. 관심은 2000년 이후의 경제상황인데 시장 변동성은 늘어나고, 경제성장은 더디고, 소득분배는 나빠졌다. 금투세를 폐지한다고 주가부양이 되기도 어렵겠지만 주가만 올라서 1400만명이 행복해질 수가 없다. 주가부양 만능론이자 국가경제를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미래다. 트럼프는 목적을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파격을 지속할 것이다. 트럼프는 자기가 재집권에 실패한 것이 경기침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당선되면 짧은 기간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재정정책·통화정책 다 동원할 것이다. 그런데 재정정책의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국채를 발행하면 시장금리가 오를 테니 연준의 팔을 심하게 비틀어 금리를 낮추라고 할 것이다. 안 그래도 미운 파월인데 체면 차릴 것도 없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와 닮은 점이 많고, 트럼프가 당선되면 그의 영향을 상당히 받을 것이다. 정책이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금도가 없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윤 대통령은 재정정책은 안 쓸 테니 경기부양의 유일한 선택은 통화정책이다. 한국은행에 금리는 낮추라고 하면서 부동산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는 걱정되니 시중은행에 대한 강력한 창구지도에 들어가지 싶다. 트럼프는 연준이 금리 결정을 할 때마다 한마디씩 할 텐데 그때마다 한국의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출렁일 것이다. 안 그래도 요동치는 시장인데 미국 대통령까지 개입하면 오죽하겠나. 현 정권은 공매도 전면 폐지를 다시 만지작거릴 것이며, 국민연금 돈이 주가 및 환율 방어에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 불행히도 최근 정치인들은 우파 포퓰리즘이란 유행을 타고 있고 그 중심에 트럼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