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결코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생물학적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그들과 관련된 몇 가지 사항도 그대로 내 것이 된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염색체 두 묶음, 사방이 온통 누런 논으로 둘러싸인 집도 고스란히 나를 규정하는 환경이 된다. 그곳이 한반도 남쪽의 어디라는 사실도 바뀌지 않는다.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다세포 생명체가 활보하는 지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구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저 거기 살고 있을 뿐이다. 지구인 모두는 대기권에 둘러싸인 지구공동체의 일원이다. 예외는 없다.
2023년은 평균 기온이 기준보다 1.5도 높았다. 참고로 말하면 19세기 후반 50년의 평균 기온이 기준이다.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2024년의 6~8월 평균 기온은 25.6도로 평년보다 1.9도 높았다. 숫자로만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서 반사된 이글거리는 적외선이나 그늘 하나 없는 고추밭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평균 기온과 사뭇 거리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평균 기온에는 장마도 습도도 없다. 태양에서 8분 걸려 지구에 도달한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지구에 갇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인간에게 열 한계가 있을까? 얼마나 춥고 얼마나 더워야 우리 생리학 체계가 말을 듣지 않게 될까? 옷과 집, 그리고 냉난방 장치 같은 교란 요인 탓에 우리는 아직 정확한 값을 알지 못한다. 포유류에게는 추우면 몸을 떨어 열을 내는 갈색지방이라는 장치가 있다. 그러나 신생아나 극지방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대부분 성인은 갈색지방이 적다. 최근 과학자들은 근육도 열을 낼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얻었다. 열을 내는 데 쓰는 에너지와 쉬거나 잘 때 소모하는 기초대사율, 일하느라 쓰는 에너지 모두를 합하면 하루 대사율이 된다. 열을 내느라 에너지를 더 쓰면 전체 대사율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더우면 우리 몸은 열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몹시 더울 때 전체 대사율은 떨어질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더울 때도 인간의 대사율이 올라간다. 사는 데 적합한 온도인 온도중립구간(thermoneutral zone)을 벗어나면 몸은 그에 적응하느라 여분의 에너지를 써야 한다. 더울 때 몸의 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밝힌 런던 로햄튼 대학교의 루이스 할시는 우리 몸의 목표가 약 37도 근처의 심부체온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온이 올라가면 기본 온도로 돌아가고자 피부 근처의 혈관을 활짝 열어 열을 잃고 땀을 흘린다. 경험으로 잘 아는 사실이다. 생물학적으로는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 핵심적인 방법이다.
할시는 온도가 40도와 50도, 습도가 각각 25, 50%인 방에 피험자를 두고 이런저런 분석을 진행한 뒤 인간의 열 한계가 42도 근처라고 진단했다. 습도 50%에 온도가 50도면 대사율이 약 48% 올라간다. 이 조건에서 자전거를 타는 피험자의 체온은 금방 38.7도에 이른다. 땀으로 손실된 수분을 보충하지 않으면 현기증이 오거나 기절하는 ‘열 탈진’ 상태에 이르고, 할시의 상한선에 이르면 열사병(heatstroke)에 걸릴 수도 있다. 땀이 더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한동안 피부로 보내느라 혈액이 부족했던 내부 장기로 흐름을 돌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부 장기가 붓고 오작동을 일으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세포 안의 단백질이 변성되기 시작하고 기능을 멈추면서 특히 신경계가 위험에 빠진다. 근육을 작동하는 신경계가 말을 듣지 않으면 심장이 먼저 타격을 입는다. 최근 진행된 연구 결과를 보면 고온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의 심장이 더 빨리 뛴다. 여성의 몸에 지방이 많아 밖으로 열을 내보내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37도보다 인간의 체온이 높게 설정되어 있으면 더위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체온은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다. 처음 포유류가 진화를 할 때 세균이나 곰팡이의 침입을 억제하고 세포 안 대사 효소의 활성을 최대로 끌어내고자 설정한 온도가 바로 37도인 것이다. 그 당시 지구의 최고 온도는 체온보다 낮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땀 흘리고 혈관을 확장하느라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초기 인류는 지금의 더위를 예측하지 못했다. 우리는 지구를 떠날 수 없다. 그러니 할 일은 둘 가운데 하나다. 해결하든가 아니면 파국에 이르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