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가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을 불러 진행한 현안질의 내용이 알려지자 공분이 일고 있다. 평소 스포츠에 큰 관심은 없었기에 질의와 응답 관련 유튜브를 보고서야,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의와 응답 내용은 비단 축구협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폐쇄적 엘리트 조직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축구협회 회장과 국가대표팀 감독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근래 고조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에 특히 문제가 된 것은 국가대표팀 감독의 선출 과정이다. 한마디로 대표팀 감독 선출 과정이 오늘날 한국인들의 상식과 거리가 있었다. 신임 감독 선출 과정을 이끌던 전력강화위원장이 협회장과의 면담 후 개인 사정을 들어 사퇴한 뒤, 축구협회 정관이나 권한 위임 절차 없이 협회 소속 다른 사람이 신임 감독 선임을 주관했다. 규정된 절차에 따른 외국인 감독 지원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규정된 절차를 밟지 않은, 내야 할 서류나 자료도 제출하지 않은 사람이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다.
현장에 있다가 발언 기회를 얻은 한 축구해설위원의 말은 일반인들의 의문과 답답함을 잘 표현했다. 그는 ‘왜 축구협회장이나 신임 감독은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바로 그들 앞에서 제기했다. 그 발언 전후에 있었던 축구협회장과 신임 감독의 발언은 그 축구해설위원의 의문이 정직한 것임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무한 반복했다. 심지어 그들은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문제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했다. 정말로 인식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척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축구해설위원은 자신의 의문에 대한 원인을 스스로 답했다. 하나는 그들이 어릴 때부터 재벌가의 일원으로서, 엘리트 축구선수로서 일반인과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축구협회장을 그들이 선출해 놓은 선거인단에서 뽑기에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1970년대 유정회가 생각났다. 그때는 그래도 전체 국회의원의 3분의 1만 대통령이 뽑았다.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은 자신이 감독으로 선임된 것에 대해 전혀 문제가 없으며 대표팀 감독을 자신의 “마지막 봉사”라고 말했다. ‘봉사’라는 단어로 한국 축구에 대해 자신이 은혜를 베푼다는 인식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의 연봉이 20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월급으로 2억원쯤 받는 봉사가 어디 있겠는가.
사상은 제도로 구현된다. 조선시대 유학도 그랬다. 유학 사상은 문치주의로 구현되었다. 사헌부와 사간원 관리나 사관(史官) 같은 관리가 그것을 이끌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청대(請臺)’나 ‘정청(政聽) 참여’다. 청대는 여러 정부 기관에서 예산을 지출할 때 부정을 막기 위해 반드시 사헌부 관원이 참석하는 제도다. 정청은 관리의 인사고과를 논의하는 회의를 말한다. 정청에 사관이 참여한다는 것은 인사고과 논의의 모든 내용을 기록한다는 뜻이다. 청대나 사관의 정청 참여는 조직 외부 사람들도 납득할 수 있도록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였다. 조선 시대에 잘 알려진 개혁으로 효종 때 시작된 대동법(大同法)이 있다. 그와 비슷한 입법이 그에 앞서 실시된 선혜법(宣惠法)이다. 두 법은 이름뿐 아니라 추구하는 이념도 달랐다. ‘宣惠’는 왕이 은혜를 베푼다는 뜻이고, ‘大同’은 차별 없이 공정하게 함께한다는 뜻이다. 선혜법이 계속됐다면 대동법은 실시될 수 없었다.
오늘날의 한국은 많은 이들의 희생과 오랜 노력으로 최소한의 민주주의인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하지만 하나의 시대는 늘 그 내부에 여러 시대를 포괄한다. 동시대를 살아도 사람마다 다른 시간을 살고, 그 다른 시간은 다른 삶과 다른 세상을 의미한다.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살 순 없다. 그래도 최소한 국민들 눈치를 보는 게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