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이렇게 말한 이는 누구일까? “저는 항상 제 자신을 사물의 밑바닥에 도달하려는 학생으로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좋은 하루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보다 조금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잠자리에 드는 날입니다. 그래서 요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할 때, 저는 보통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재밌을 것인가? 변화를 만들 것인가? 그리고 무언가를 배울 것인가?”
답은 빌 게이츠. 2주 전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인 다큐멘터리 <왓츠 넥스트: 빌 게이츠의 미래 탐구> 촬영 뒷얘기를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하며 시작한 이야기다. 테크업계의 선구자이자 자선사업가로 활동하는 빌 게이츠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긴급한 현안을 찾아서 같이 고민하는 ‘배움의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총 5편으로 구성된 이 다큐에서 빌 게이츠는 제임스 캐머런, 레이디 가가, 버니 샌더스 등은 물론 여성권리 옹호 활동을 하는 자신의 딸과 대담한다. 인공지능의 전망과 위험, 소셜미디어 시대에 쏟아지는 잘못된 정보의 문제, 기후위기와 첨단 기술을 이용한 해결 가능성, 소득불평등의 부당성과 빈곤 퇴치, 치명적인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가져다줄 과학과 혁신 등 우리 시대의 핫한 과제를 망라하고 있다.
빌 게이츠가 뛰어든 이 다큐의 목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해 대화하도록 영감을 주는 것이다. 그는 세계 최고 갑부이자 자선사업가로서 책임감을 나누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뇌한다. 그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문제에 집중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비관적으로 생각하거나 머리를 모래 속에 파묻지 말고 이 세계적인 문제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관여할 때 진전하는 길이 있다고 역설했다.
다큐멘터리 그 자체도 감동이지만 더 큰 감동은 다른 곳에서 왔다. 세상에, 그 큰돈을 번 부자가 인류를 구할 문제에 그렇게 오랜 시간 돈을 쓰고 공들이는 진심이 놀라웠다. 게다가 관심 가는 분야의 고수들을 초빙해 꾸준히 듣고 공부하고 책도 쓰는 갑부의 모습이 낯설고도 존경스럽다. 억만장자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공식적으로 말한 최초의 미국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에게 소득불평등에 대해 토론하자는 제안을 먼저 하는 배포는 무엇인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니트에 면바지를 입고 대단한 사람들과 자기 언어로 토론하는 이 억만장자의 모습을 보자니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경연(經筵)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었다. 중국 전한(前漢) 시기, 황제에게 유교 경전을 강의하며 시작되었고, 고려 문종 때 도입되어 조선 세종 시대에 황금기를 이뤘다. 실록에 등장하는 경연에 대한 기록이 2000여회에 달할 정도였다. 말하자면 황제도, 왕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학문이 높은 신하에게 배웠으며 성군일수록 공부에 매진했다. 공부하는 사람이 군자(君子)다. 자신의 부족을 알기에 그렇다.
역대급 폭염에 기후대응을 하겠다며 댐을 짓겠다고 하고, 국가의 미래가 달린 R&D 예산을 대폭 삭감해버리고, 오락가락 돌출 정책들을 보자면 과연 어느 전문가의 어떤 조언이 있었는지, 어떠한 고뇌를 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현대판 경연이라도 벌여야 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