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왜 탄핵되었을까? 헌정 사상 유일했던 탄핵의 원인을 한두 가지로 좁힐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눈으로 본 바로, 그것은 분명했다. 세월호 참사였다. 2016년 겨울, 나는 참여자라기보다는 관찰자로 광화문에 종종 나갔다. 집회를 선도하는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부터 참여 대열의 맨 끝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까지,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그리고 언제나 같은 상황을 목도했다. 광화문 촛불 집회는 1987년의 치열함과는 달리 한바탕 축제 같았는데, 이 축제에 끼지 못한, 차마 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보다, 박근혜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그 대열에 끼지는 못했다. 그들은 축제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 겨울 광화문 집회의 맨 끝에는 늘, 세월호 유가족 깃발이 서 있었다. 그 깃발은, 제각기 춤추고 자유발언을 하는 사람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어둠 속에서 대열의 맨 뒤를 지켰다. 차량을 통제하는 경찰의 무리와 집회 대열 사이에 늘 유가족이 있었다. 집회는 안전했다. 그들은 얼어붙은 아스팔트 위에 조용히 앉아 무대 너머 박근혜가 있는 곳의 하늘을 응시했다. 축제 같던 집회가 끝나고 대열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할 때, 그들은 맨 앞에 있었다. 마침내 법원이 허가한 구역의 끝에 다다라 경찰과 바리케이드가 대열을 막아섰을 때, 그것을 뚫고 가려는 무리는 그들이었다. 그들은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우성이 홀로 철조망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다. 박근혜는 탄핵되었다.
우리는 안다. 세월호 참사는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박근혜의 탄핵 사유가 아니다. 법적 인과관계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따지면, 2016년 광화문 촛불은 박근혜의 탄핵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다. 박근혜의 탄핵은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라는 절차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 법적 절차에 거리에 나온 시민들의 기여는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다. ‘광화문에 100만명의 시민이 몇 번이나 나와서 대통령이 물러나라 하니,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했고, 헌법재판소도 이를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문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박근혜는 촛불이 없었더라면 결코 탄핵되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는 박근혜 탄핵의 법적 근거는 아니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국회에서 박근혜의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을 때, 방청석에는 그들이 앉아 있었다. 100만명의 집회가 벌어지고 그 대열이 청와대로 진격할 때, 세월호는 맨 뒤에서 맨 앞까지를 지켰다. 박근혜는 세월호로 인해 탄핵되었다.
현대 민주주의는 온갖 법적 절차로 제도화되어 있다. 국회와 정부의 의무를 명시한 헌법, 정당과 선거에 관한 법들이 민주주의를 규정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것은 주권을 가진 시민들과 그들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이다. 민주주의는 법적 절차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의해 작동한다. 법적 절차는 공적 행위의 한계이자, 정치라는 물을 퍼담아 나르는 그릇이지, 민주주의의 실체가 아니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들이 다양하다 못해 나열조차 어렵다. 주가조작, 명품백 수수, 공천 개입, 불법 관저공사, 학위논문, 양평고속도로, 인사 개입, 선거운동과 공천에 이르기까지, 실로 광범위하다. 과거에도 친인척 비리나 부정 의혹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정도는 아니었다. 자식이나 형제는 같이 사는 사람이 아니고, 대통령을 만나려면 흔적이 남았다. 배우자는 다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대통령 배우자들은 공적 활동과 국정 개입을 자제해왔다. 그 금도가 무너졌다. 수사나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민주주의 퇴행의 징후가 이런 방식으로 나타날지 정말 몰랐다. 이제 보수언론조차 김건희 한 사람 때문에 보수가 모두 망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특검법 표결에서는 8표 중 4표가 무너졌다. 더는 대통령이 갈 곳이 없다.
자식과 형님이 감옥에 갔다고 해서 정권이 무너진 일은 없었다. 수사로 유무죄를 가리면 그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출신만은 아니다. 특별검사의 수사팀장이었다. 내가 한 특검은 맞고, 다른 사람의 특검은 틀리다는 논리는 민주주의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세월호처럼 이태원 참사도 잠시 잊혀진 것처럼 보인다. 지난번엔 그렇지 않았다. 정치와 민주주의가 빨리 돌아와야 한다. 국가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 빈사 상태의 정부로는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국민도, 하다못해 여당도 못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