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기계발 열풍과 신자유주의

2013.08.09 21:24 입력 2013.08.09 22:14 수정
류웅재 | 한양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최근 전 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고 이것이 사회를 운용하는 경제제도로써 그 유통기한을 다했다는 말들이 들려온다. 이는 오랜 시간 축적돼 온 신자유주의 모순이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거쳐 2011년 뉴욕 월가점령 시위로, 그리스·스페인·영국·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 국가들에서 전례 없는 규모의 연쇄 시위로 확산된 데에서도 볼 수 있다. 또한 근래 논문과 책 등 다양한 학문적 담론으로 생산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탓에 한국 언론담론의 자장 내에서도 이제 신자유주의가 그 소임을 다하고 머지않아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예단이 나오고 있다. 보수·진보는 유사 논조로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성찰적으로 사유하고 새로운 대안과 조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도처에서 제기되는 신자유주의 비판에 대한 급격한 피로감이나 저항 또한 접할 수 있다. 일례로 모든 걸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거나 “이게 다 자본주의 탓”이라 말하는 것은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논리가 그중 하나다. 바꿔 말해 이는 현실의 무수한 결과 층위를 가진 미시적 권력관계와 이로 인한 크고 작은 모순들을 섬세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이를 신자유주의란 애꿎은 허수아비를 세워 손쉽게 해결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기고]자기계발 열풍과 신자유주의

이러한 이야기들이 생성되고 유포되는 지점과 이유를 이해하고 그중 어떤 주장은 꽤 설득력을 지녔다. 그러나 동시에 이 중 상당수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기 어려운 기호와 언술, 미디어를 통한 상징 조작에 의존하고 있다. 가령 빌 게이츠가 주창한 창조적 자본주의나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적 경영, 지속가능한 성장, 그리고 요즘 한국 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창조경제 담론 등이 그중 일부다. 이러한 담론정치의 배면에서 기민하게 작동하는 자본의 유연한 축적의 논리, 또는 자본주의의 마술적 자기복원 능력을 확인하는 일 또한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들의 허망함은 대개 ‘무거운’ 구조의 문제들을 개인의 태도 또는 심리상태의 변화로 ‘가볍게’ 돌파하고 개선할 것을 요구하는 데 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온갖 종류의 병리적 징후, 가령 좌절과 우울, 불안과 피로,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허기 등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고,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진화한 테크놀로지와 과학적 도움으로 손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재구성된다. 가령 자기계발과 힐링, 여가와 소비, 생명을 담보로 하는 각종 보험과 의료산업, 공교육을 대체한 엄청난 사교육시장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무수한 문제들은 불가피한 삶의 한 단면이자,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개선될 수 있는 것들로 프레임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현실의 모순은 개인의 다짐이나 치열한 노력 또는 ‘자기계발’로 쉽게 해소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자기계발 열풍은 일종의 사회현상일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개인을 주체화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일부이며 세련된 통치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과거 국가와 제도의 직접적 통치를 대신해 등장한 신자유주의 아래 통치술의 변화, 또는 자기계발 열풍은 미셸 푸코의 표현을 빌리면 일종의 자기 테크놀로지이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를 단순히 외형적 제도나 경제운용의 원리, 좁은 의미의 이데올로기로 간주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멀며 이것이 야기하는 문제를 용기 있게 직면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데에서도 멀다. 이는 주체를 형성하는 광범위한 담론 구성체이자 세련된 전략이며,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과 삶의 양식, 그러한 주체를 내면화하게 하는 통치술이자 일종의 시대정신인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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