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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과 안심소득 온당한 비교를 하려면

2021.06.11 03:00 입력 2021.06.11 03:03 수정
윤형중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정책연구자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 사이에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는 모양새다. 두 정책을 비교하는 논의도 활성화되고 있다. 다만 온당치 않은 비교도 발견된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2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정동칼럼 ‘안심소득과 기본소득, 오해와 진실’도 그중의 하나다.

윤형중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정책연구자

윤형중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정책연구자

이 교수의 비교가 온당치 않은 첫 번째 이유는 안심소득제를 마이너스 소득세로 오인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갑, 을, 병이란 세 사람의 소득이 각각 0, 100, 500이라고 가정한 뒤 안심소득제가 시행되면 병에게 과세한 50을 갑에게 지급해 최종 소득이 각각 50, 100, 450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준 이상의 소득자에게 과세해 마련한 재원으로 저소득층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은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한 마이너스 소득세이고, 안심소득제에는 과세 방안이 없다. 안심소득제는 설계자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가 밝혔듯 ‘한국형 마이너스 소득세’를 표방하고 나섰지만, 실제론 중대한 결격 사유가 있는 셈이다. 오 시장의 안심소득제가 시행되면 이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갑, 을, 병의 소득은 각각 0, 100, 500에서 50, 100, 500으로 바뀐다. 어디에도 없던 50이란 소득이 창조되지만, 오 시장은 아직 이 50의 재원 마련 방안을 밝히지 않고 있다.

만일 오 시장이 고소득자에게 과세하는 방안을 담아 안심소득제를 마이너스 소득세로 만든다면 이 교수처럼 비교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재분배 효과와 재원 규모라는 두 가지 잣대로 안심소득(정확히는 마이너스 소득세)과 기본소득을 비교했다. 같은 재원이라면 안심소득의 재분배 효과가 우월하고, 기본소득이 안심소득과 비슷한 재분배 효과를 얻으려면 세 배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게 이 교수의 견해다. 하지만 이는 착시에 의한 주장이다. 이 교수가 든 사례에서 갑, 을, 병에게 25%의 세율로 과세해 확보한 150의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이들의 소득은 각각 50, 125, 425가 된다. 안심소득에선 병에게 50을 거둬 갑에게 지급해 각각 50, 100, 450이었다. 두 제도의 재분배 효과가 비슷해지도록 세율을 맞춘 것인데 이때 과세한 금액만 본다면 기본소득제가 안심소득의 세 배처럼 보인다. 하지만 병의 입장에서만 보면 기본소득제에선 125를 세금으로 냈다가 50을 돌려받기 때문에 순비용이 75이고, 안심소득제에선 받는 것 없이 50을 내기 때문에 순비용이 50이다. 순비용의 차이는 25만 발생하고, 갑과 을의 순비용을 합치면 두 제도의 비용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좀 더 수월한 비교를 위해 갑, 을, 병의 소득이 각각 0, 400, 800이라고 가정해보자. 병에게 10%의 세금을 부과해 갑에게 지급하는 마이너스 소득세와 모두에게 20%의 소득세를 부과한 뒤에 모두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의외로 두 제도에서 세 사람의 소득은 똑같다. 개개인의 순비용으로 봐도 두 제도는 동일하다. 두 제도의 재원 규모가 다르다는 주장은 조삼모사와 조사모삼을 다르게 보는 것과 같다. 더 나아가 기본소득이 안심소득보다 재원이 많이 든다는 주장은 개개인이 누리는 복지를 고려하지 않고, 내는 세금에만 집중하는 ‘재정환상’을 유발한다. 참고로 재정환상은 복지 확대의 중요한 걸림돌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왜 모두에게 과세하고, 모두에게 지급할까. 그렇게 하는 것이 행정적으로 용이하고, 낙인효과가 없으며, 증세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안심소득제에선 절반의 유권자가 손해를 입지만, 소득세나 자산세에 기반한 기본소득에선 과반 이상이 순수혜자가 된다. 경제적 이득만 따진다면 중산층과 저소득층 간의 연대를 통한 증세가 가능해진다. 기본소득은 사전에 모두에게 지급한 이후 과세를 통해 선별환수하는 제도이고, 마이너스 소득세는 시장소득이 확정된 이후 과세와 지급 대상을 선별한다는 차이도 있다.

이 교수는 또 두 제도 모두 가성비가 낮으며 “현금복지는 복지정책의 일부에 불과”하고 “북유럽식 복지국가는 질 좋은 서비스 복지를 기초로 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고 했다. 공공성이 강한 대부분의 서비스 복지는 원리상 현금성 복지로 대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를 비롯한 기본소득론자들도 서비스 복지를 기본소득과 병행 발전시킬 대상으로 꼽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복지 지출의 총량뿐 아니라 현금복지도 미약한 수준이다. 2017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의 비중은 10.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낮았고, 현금성 복지 지출의 비중은 4.0%로 이조차도 멕시코 다음으로 낮다. 같은 해 복지 지출 비중이 31.5%로 OECD 국가들 중 1위인 핀란드는 현금성 복지 지출 비중이 17.5%로 5위다. 이 교수의 인식과는 달리 서비스 복지가 발전한 국가들은 대부분 현금성 복지도 발달했다.

오 시장이 보수 재집권 전략으로 꼽은 안심소득제를 제대로 검증하려면 더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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