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회의원 ‘입법실적 1위’의 빛과 그림자

2024.05.22 20:46 입력 2024.05.22 20:49 수정
고병국 전 국회의장 비서관

300명 국회의원 중 1등을 한다는 것은 참 명예로운 일이다. 국회의원 본연의 책무인 입법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제 곧 21대 국회가 문을 닫는다. 국회의원 4년간 입법활동을 다양한 1위 기록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빛이 있으면 짙은 그림자도 있다.

입법실적을 평가하는 여러 기준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법안 발의 건수다. 21대 국회 법안 발의 1위는 민형배 의원이다. 4년간 총 325건을 발의했다. 평일 기준으로 3일에 1건씩 법안을 제출한 셈이다. 2위는 윤준병 의원(281건), 3위는 이종성 의원(211건)이 차지했다. 그런데 임기 만료로 폐기되는 법안 건수 1위도 민 의원이다. 민 의원 발의 법안의 본회의 통과율은 17.5%로, 268건의 법안이 폐기될 예정이다. 발의 1등의 영광 뒤에는 미처리 법안 최다 의원이라는 불명예가 함께 붙어 있다. 미처리 법안 건수 2위는 윤 의원(185건), 3위는 최혜영 의원(139건)이다.

법안 처리 건수를 기준으로 보면 96건을 처리한 윤 의원이 단연 1위다. 법안 하나를 통과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감안하면 96건은 경이로운 기록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처리 건수 1위의 명예 뒤에도 짙은 그림자가 있다. 우선, 윤 의원의 처리 법안 96건 중 철회가 13건이다. 그리고 ‘일몰기한 연장 법안’이라는 것이 있다. 주로 조세특례제한법과 지방세특례제한법으로 발의되는 경우인데, 이는 단순히 과세 관련 법 적용 만기일을 늦추는 것이다. 96건 중 16건이 일몰 연장 법안이다. 또한 13건은 국회법 제58조에 따라 소위원회에 직접 회부되었다. 이 법안들은 유사 법안이 이미 논의되고 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발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례에선 국회 상임위원회의 ‘검토보고서’도 붙지 않는다.

단순 건수보다는 법안 통과율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21대 국회에서 처리율 1위를 기록한 이는 배현진 의원이다. 40건 발의에 29건을 통과시켜서 무려 72.5%의 통과율을 달성했다. 처리 법안 중 원안가결과 수정가결이 38%로 법안 처리 유형도 매우 모범적이다. 그런데 배 의원의 처리 법안 중 13건이 ‘문화재’를 ‘국가유산’으로 변경하는 국가유산기본법 및 관련 세트 법안이다. 문화재청은 2022년 1월에 ‘국가유산체제 도입 개선안’을 마련하고 이를 새 정부의 국정과제로 채택한 바 있다. 전후 상황과 법안의 내용 및 성격을 고려하면 이 법률의 제·개정을 주도한 주체는 의원이 아니라 정부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경우를 보통 ‘청부입법’이라고 부른다.

이색적인 입법실적 1위 기록도 있다. 김웅 의원은 임기 4년 동안 발의한 법안 중 단 한 건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한 진기록을 남겼다. 법안 통과율 하위 2위는 조정훈 의원(5.1%), 3위는 용혜인 의원(5.4%)이다. 또한 법안 통과 건수 하위 1위는 용·조 의원, 박병석·홍영표 의원이다. 4명 모두 4년간 2건씩 처리했다. 하루에 가장 많은 법안을 발의한 1위는 박용진 의원이다. 박 의원은 2020년 6월16일 하루에만 51건의 법안을 제출했다.

발의 건수, 처리 건수, 법안 통과율 기준으로 분석한 1등 의원 사례에는 모두 화려한 빛과 어두운 그림자가 공존한다. 이렇게 건수나 비율 등 숫자로 입법실적을 평가해본 이유는, 이제 이런 정량적 기준으로 평가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시민단체도, 언론도, 정당도 대부분 이렇게 무의미한 건수를 기준으로 의원들을 평가하니, 의원들도 소모적인 숫자 늘리기에만 열중한다. 그렇게 악순환이 반복된다.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 법이 우리 사회의 변화와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가 되어야 한다. 22대 국회는 꼭 필요한 법이 충분히 검토되어 신중하게 발의되고, 발의된 법안은 최대한 처리하는 상식적인 국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고병국 전 국회의장 비서관

고병국 전 국회의장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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