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이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시민들은 노란색 바람개비를 들고 노 전 대통령을 기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화를 보냈고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는 2년 연속 봉하마을을 찾았다. 노란 물결로 뒤덮인 추도식에는 여야 지도부·의원들과 한덕수 국무총리,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참석했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여야가 노무현정신 계승을 다짐한 의미 깊은 자리였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인 김경수 전 지사는 “지금 노무현정신은 어떤 의미일까”라고 자문하며 ‘통합’을 꼽았다. 노 전 대통령은 대화와 타협을 국정기조로 삼았고, 첫 국회 연설에서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선거법 개정을 주장하며 통합을 모색했다. 지지층 반발에도 대연정을 제안하며 야당과의 협치도 포기하지 않았다. 유독 14주기에 노무현정신을 소환하는 시민과 정치인이 많아진 건 한국 정치가 노무현정신과 멀어도 너무 멀어져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과거 정부가 불법 집회·시위에 경찰권 발동을 사실상 포기했다”며 민주노총 집회에 대한 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헌법상의 권리를 후퇴시키려는 시도라서 유감스럽다. 여당은 “통합 가치를 새기겠다”면서도 비판언론과 야권을 ‘가짜뉴스 선전선동 세력’으로 매도했다. 말로만 노무현정신을 되뇌는 이율배반적 태도다. 더불어민주당은 14주기 의미를 “불통 대통령에게 위협받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 국정 독주를 비판한 것이지만, 민주당 스스로는 노무현정신을 얼마나 가치 있게 지키려 했는지 냉철히 돌아봐야 한다.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거래 의혹은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지향했던 노무현의 유산을 걷어찬 것이나 다름없다. ‘개딸’로 불리며 선 넘은 문자폭탄을 쏟아내는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은 인신공격을 자제하고 ‘노무현 감시자’를 자처했던 노사모 활동을 무겁게 반추해볼 때가 됐다.
14주기 추도식 주제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집필한 저서 <진보의 미래>에서 가져왔다. 한국 정치의 협치나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표현의 자유나 시민 기본권이 위협받는 엄중한 현실을 직시한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무너진 민주주의를 돌려세우고, 기득권의 특권·반칙을 바로잡고, 일상화된 분열과 대립을 해소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생전 화두인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도 성숙한 시민정신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15주기엔 노 전 대통령이 그리운 이유가 더 이상 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