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 15일 인권위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 긴급구제 요청을 기각한 데 대해 사과했다. 송 위원장은 “여러 내부 사정으로 순탄하지 못한 점이 있어 인권위가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면서 “유감스럽기도 하고 인권위를 지켜보시는 많은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인권위에서 빚어진 내홍 등에 대해 위원장으로서 처음이자 직접 사과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인권위는 항명 혐의로 입건된 박 대령을 긴급구제해달라는 군인권센터 요청을 지난달 29일 기각 처리했다. 인권위 군인권보호위원회가 위원 일정 등을 이유로 보름가량 회의를 열지 않고 미룬 끝에 내린 결정이다. 앞서 인권위가 박 대령에 대한 항명죄 수사 등은 즉각 보류돼야 한다는 성명을 내고, 긴급구제 요청엔 고개를 돌린 것이다. 군인권보호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김용원 인권위 상임위원이 맡고 있다. 그는 긴급구제 안건 처리가 미뤄지는 동안 사안의 긴급성을 고려해 열릴 예정이던 임시 상임위에도 불참하고는 송 위원장 측과 사무처가 무리하게 상임위를 추진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인권위는 지난 8일엔 시민단체의 수요시위 보호 요청 진정을 기각해 인권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 건도 침해구제위원장인 김 상임위원이 참석 위원 3명 중 2명의 찬성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인권위법은 ‘위원 3명 이상 출석, 3명 이상 찬성이 있어야 의결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김 상임위원은 “3명은 ‘기각’이 아닌 ‘인용’에만 필요한 정족수”라는 해석으로 맞섰다. 이에 인권위 사무처와 김 상임위원이 각기 다른 입장의 보도자료를 내며 극심한 내홍을 빚고 있다.
인권위 내부 갈등의 표면적 이유는 의결 구조·운영 절차에 대한 의견 충돌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이념 전쟁’ 선포 이후 여야·보혁 간 대결이 갈등 구도로 치닫는 양상임을 간과할 수 없다. 인권위 지도부 4명 중 송 위원장과 상임위원 1명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 재임했고, 김용원·이충상 두 상임위원은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인사다. 국민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이 이념 갈등의 장으로 변질되는 상황이 개탄스럽다. 송 위원장은 “인권 문제는 좌우,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헌법상 인권 정신과 국제 인권 규범을 오로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가 정권 코드에 맞추는 기관으로 전락해선 안 되고, 인권위원들이 권력에 아부하면 인권위는 인권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일침이다. 인권위가 짠맛을 잃은 소금이 되지 않길 바란다.